Page 34 - PHOTODOT 2017년 3월호 VOL.40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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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by10야구공앤디워홀
〈시대정물〉시리즈를 빼면, 대부분 꽃 작업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배경이
궁금하다.
어머니가 병환이 있어 추운 겨울을 몹시 힘들어했다. 그래서 봄이 빨리 왔으
면 하고 기다리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아
파트 화단에 목련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됐다. 목련은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이라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그날 목련 한 송이를 작업실
로 가져와 처음으로 ‘꽃’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시작된 〈꽃〉 시리즈가 지금
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꽃’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다가 돌연 ‘정물’ 시리즈로 방향을 전환했다. 특별
한 이유가 있는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반짇고리로 쓰시던 조그마한 플라
스틱 상자를 하나 보게 됐다. 그 안에는 어머니의 머리핀, 그리고 작은 십자
가와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단추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고
스란히 느껴지는 것들이라 차마 버릴 수가 없었는데 얼마 후 어머니의 체취
가 묻어 있는 사물들이 정물사진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후 주변 사람들
을 통해 ‘사물’에 대한 기억의 아카이브를 기증받으면서 〈시대정물〉 시리즈
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버려졌거나 버려지게 될 물건들을 수집했다.
한때는 누군가에게 소중했을 물건들을 사진 속에 영원히 남겨 두고 싶어 시
작한 작업이다.
‘시대정물’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물에는 그 시대의 ‘정신’이 들어있다고 본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도
있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던’ 사회가 시
작되면서 모던이라는 사상이나 인물, 혹은 여러 가지 문학이 있을 수 있듯이 사진 작업 역시 그렇다.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진중한
정물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정물 역시 시대의 정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찰이 필요하다. 모든 피사체가 그렇지만 정물사진은 특히 사물과의 교감이
한 때 즐겨 찾던 물건도 문명의 이기에 맞물려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 지거나 중요하다. 필름 작업은 디지털과 달리 촬영 후 바로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
버려지곤 한다. 어느 한 시대의 흐름에서 결국 소외당한 사물들로 전락하고 에 뷰 파인더를 보면서 한정된 프레임 내에서의 앵글과 사물의 배치, 그리고
마는 것이다. 조명 등을 관찰하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지게 된다. 특히 나의 촬영 방식은, 사
버려진 사물을 시(詩)적인 언어로 재탄생시키듯이 사진에 담아내고 있다. 진을 여러 장 찍고 그 중에 잘 나온 한 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정
〈시대정물〉 시리즈 작업을 할 때 촬영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 물사진을 찍을 때 필름 한 컷으로 한 번만 촬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
인가? 한 촬영 방식은 필름 낭비가 최소화되는 장점도 있지만, 한 컷을 위해 단 한
오래전, 드로잉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다. 드로잉을 번만 셔터를 누르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상을 관찰하는 시
할 때 대상을 5분 보고, 30분 그리지 말고, 30분 보고, 5분을 그리라고 하셨 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작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결정적인 한 컷을 위해
는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기 전에 대상을 충분히 관찰하라는 것이다. 감각들이 보다 예민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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