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PHOTODOT 2017년 3월호 VOL.40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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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물〉 촬영 방법이 궁금하다.
촬영할 때 카메라 장비는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이용해 간단히 사진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디자인학과 교수
이셨던 아버님이 쓰시던 대형카메라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주로 필름 대형 카메라 4X5inch나, 8X10inch로 작업을 하지만 특정 장비
를 고집한다기보다는 익숙해서 쓰고 있다. 찍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형 카메
라의 렌즈와 필름 사이, 속칭 ‘자바라’로 불리는 구간의 움직임을 보면서 전
체 분위기와 구도를 잡아 나간다. 조명 역시 간단하고 쉬운 조명 방법을 쓴
다.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도록 대형 소프트 박스 조명을 쓰고 있는데 주로
탑 라이트와 정물 측면에서 하나를 더 사용한다. 〈시대정물〉 시리즈는 플랫
하게 작업한다. 프레임 안의 정물에 나의 어떤 감정을 이입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사물들 각각의 역할을 그대로 재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진에 도입하고 싶었다. 사진에서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고민하다가 지금의
물사진은 촬영할 때 앵글이 높아 사다리에 올라가서 찍기도 하는데 앵글의 색 면과 색 재현이 가능해졌다.
각도나 위치 등은 어떤 과학적인 기준이 아니라 순간적인 직감이나 감각으 작가는 ‘정(靜)물 사진’이 아닌, ‘정(情)물 사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로 결정된다. 사물의 배치나 색감 등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 이유는 뭔가?
에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감각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 우리가 즐겨 쓰는 물건에는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의 체취와 사용감이라
엇보다도 계속된 사진작업의 반복적인 훈련이 좋은 결과들을 나오게 하는 는 것들이 그대로 남겨지게 된다. 오래전 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싸주셨던
것 같다. 양은 도시락에는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나 있다. 그리고 부엌에서 자주 사용
〈시대정물〉 작업은 ‘사물’의 배열이나 색채 묘사 방식이 돋보인다. 두 요소 한 꽃무늬 쟁반은 오랜 세월 동안 긁히고 찌그러진 흔적들이 남게 된다. 뿐
를 조율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만 아니라 어느 분식집의 싸구려 플라스틱 녹색 그릇에도 지난 시간의 흔적
사진 속 화면은 크게 두 개의 색 면으로 분할된다. 정물이 놓이는 바닥면과 들이 남겨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물은 단순한 정(靜)물이 아닌, 정
또 다른 하나는 뒷배경이 되는 바탕 면이다. 대부분의 사물은 크지 않아 화 (情)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靜)물 사진이 아닌, 정(情)물을 사진에 고
방에서 구입한 ‘색지’를 배경지로 사용했다. 정물을 놓은 바닥면은 탁자에 천 스란히 담고 싶었던 것이다. 오래된 모든 사물은 어느 한 시대상이나, 어느
을 씌웠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맘에 드는 천을 보면 사뒀다가 쓰기도 하고, 한 때, 누군가의 추억이 배여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정물〉에
사물에 맞는 천을 동대문 시장 같은 곳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촬영 전에 바 등장하는 사물은 누군가의 정(情)물인 것이다.
닥면의 천 색상이나 배경지 색상을 먼저 정한 후에 ‘정물’을 선택할 때도 있 사진 발명 초기에는 사진술이 미비해 촬영 제약이 많다보니 움직임이 없는
고 반대로 ‘사물’을 먼저 정하고 두 가지 색상을 정할 때도 있다. 촬영 공간 정물사진들이 많았다. 이처럼 정물사진은 사진 탄생과 더불어 존재했고 하
이 세팅되면 사물을 나열한다. 사물은 서로 관련 있는 것끼리 배치 해 보거 나의 뚜렷한 장르를 형성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하다. 기존의 정물
나 혹은 그날의 느낌이나 콘셉트 방향에 따라 선택한다. 프레임 안에 약간 사진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나?
의 여백이 있어야 각각의 사물들이 또렷해 보였다. 사물이 많으면 사물 개체 정물 사진을 하다 보니 해외 정물사진들을 유심히 볼 때가 많다. 그런데 일
의 목소리가 약해진 느낌이어서 4개 혹은 5개 정도만 배치한다. 탁자 위에 반적으로 풍요로운 과일이나, 꽃이 활짝 피거나 진 모습에서 인생의 허망함,
‘정물’이 올려져 있는 느낌이 들도록 작업했는데 필름 대형 카메라는 무브먼 인생의 화려함 등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의 이
트(Movement)가 가능하다. 카메라 프런트(camera front)와 카메라 백 야기를 많이 다룬다. 그런데 나의 정물사진은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을 담아
(cameraback)을 자유롭게 하는 벨로우즈 기능이 있어 좌우회전(swing) 낸 것이다.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 가고 있는 사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과 전후경사(tilting), 그리고 좌우(shifting),상향(rising), 하향(falling) 등 렇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잊혀져가는 정물을 통해 정(情)물 사진을 찍었
을 조절해 탁자에 사물이 붙어 있는 느낌으로 촬영했다. 특히 마크 로스코 다는 차별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바로크 영향
(Mark Rothko) 작품을 좋아해 사진을 찍을 때 늘 염두하곤 했다. 인간의 근 을 받은 많은 정물사진들은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표현한 것들이 일반적인데
본적인 감정을 표현 하거나 유심히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로스코의 극도 〈시대정물〉 사진은 대부분 소프트하다. 이런 점들이 조금은 다르지 않나 생
로 절제된 ‘색면 추상’, 특히 모호한 색면의 희미한 경계선 느낌 등을 정물사 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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