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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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 싶었다. 한국인이냐는 말이 나오지 않아 자존심 상한 것도 크지만, 좀처럼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것은 만나는 현지인마다 조사 하나 틀리지 않고 던지는 똑같은
유형의 질문이다. 도대체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 아닌가! 게다가 어둡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향이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 대표적인 국민성인 듯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그럴 만도 하겠거니 싶었다. 옛 소련으로부터 무려
1 백 년 동안 무력통치를 받아 국가의 자존감이 상할 대로 상했을 테고, 자신의 땅에서 나는
석유와 가스를 한번도 ‘내 것’라 해 본적이 없는 나라였으니 당연했다. 그저 구소련의 허수아비로
공산당 정책에 눌려 살아야 했으며, 민족 고유의 문화, 정치, 경제는 물론 종교까지 몽땅
잃어버린 나라가 바로 아제르바이잔이었다.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매년 경제 성장률 8~9%를 유지하고 있다.
매장량이 어마어마한 석유와 가스 등 넘치는 천연자원으로 인해 국가 재정 또한 넘치는 나라다.
재정이 풍부한 만큼, 석유화학 프로젝트, 중소 사업단지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 도시환경 정리와
인프라 구축 등 국가의 근간을 바꾸는 수많은 건설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인구 9 백만
명에 남한의 0.8 배인 작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경제대국과 올림픽을 유치하고자 노력하는
카프카스 3 국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뎠던 13 년 전, 이 모든 상황이 나의 비즈니스를 위한 황금시장이
되어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주님이 팔 걷고 나선다면 달라지는 법이다. 실제로, 젊은 친구들이
열광하는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그 산 증인이 바로 나,
최웅섭이라고 자신한다. 이곳에서 13 년 동안 살면서 수많은 인맥을 쌓았다.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과 영부인, 비서실장과 경호실장, 여러 명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 각 부처의 차관과
국장들, 아제르바이잔의 내로라하는 경제인들까지, 숱한 사람들을 친구로 삼았다. 그들 속에서
최웅섭이라는 이름 석자가 새겨진 것은 전적으로 나의 덕이 아님을 잘 안다. 내가 자의적으로
이루려 했다면, 처음 아제르바이잔에 발을 디뎠던 보잘것없는 한국의 작은 사업가 최웅섭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명의 힘 없는 사업가를 믿고 거대한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맡겼던 것은, 항상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정직했으며, 손해를 보더라도 늘 밝게
웃으며 행복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하면서도 지혜로운 아버지를 ‘빽’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에 의지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자녀로서 주의 종으로서의 품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크리스천이라서 거짓말을 못해요.”
“나는 크리스천이라서 약속한 내용을 꼭 지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라서 이해합니다.”
‘크리스천이니까’가 내 비즈니스의 트레이드마크, 혹은 친필사인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던 것,
그것은 내가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일을 이루어나간 내 비즈니스의 주춧돌 그 자체였다.
선교사의
생존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