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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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했던 나였다.첫 방문 이후부터 체육부를 일주일 단위로 1 년 하고도 6 개월 동안을
드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최웅섭 미쳤다’고 수군댔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계속해서 드나들다 보니 경비실 직원과 친구가 되었다. 경비실에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하게 서
있다 보니, 체육부 직원들이 오가며 누구를 찾아왔는지 묻기도 했다. 체육부에 출입하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물론, 꿈에 그리던 그 사람, 체육부에서 경기장을 관리하는 담당자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수많은 전광판 카탈로그와 후지카메라를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1 년
6 개월여의 시간이 지나갈 무렵, 점점 대담해진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조건 장관실로
쳐들어갔다. 비서가 깜짝 놀라서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장관님을 만나려고 1 년 6 개월 동안 찾아왔는데, 만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장관님이 출타 중이니까 기다리셔야 합니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무려 5~6 시간을 기다린 끝에 출타에서 돌아오는 장관과 마주칠 수 있었고, 비서를 통해
장관이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오면 첫 번째로 만나드리겠습니다.”
1 년 6 개월의 기다림이 1 분 6 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관의 약속을 직접 전해 들은 나는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명함도 한 장 없이 한 나라의 장관을 대면한다니! 그
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감회에 젖었다.
다음 주 약속한 시간, 경비실을 당당히 통과해 장관실로 향했다. 사뿐사뿐 발걸음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장관과 일대일 미팅을 시작했다.
“카탈로그를 누구에게 주었나요?”
주저 없이 경기장 담당자인 그이의 이름을 댔다. 나의 대답이 어떤 사건을 불러올지는 전혀 모른
채 순진무구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대답을 들은 장관은 카탈로그를 받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더니 당장 장관실로 올라오라고 호통을 쳤다. 잠시 후 운동장담당자가장관실로 들어오는데,
내가 준 40 여 개의 카탈로그를 모두 들고 오는 것이었다. 내가 장관실에 있는 줄도 모르고
왔다가 나를 보고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를 난처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일이
그 지경이 되고 보니 유감스러웠다. 그 사건을 계기로 훗날 운동장 담당자는 나와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습니까?”
경기장 담당자를 내보낸 장관이 물었다.
“체육관 전광판 입찰에 여러 나라가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저도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제품을 최저의 가격으로 공급해서 아주 흡족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미 7 개 나라가 입찰에 참여했지만, 장관은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입찰 제안서를 가져
오라고 했다.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기쁨으로 가득 찬 채, 감사를 표하고 장관실을 나왔다.
이제‘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찰 제안서를 만들고 있던 중에
대통령이 장관을 교체하고 신임 인사를 임명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되는 일이 없는 것인지!’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견뎌온 시간인데, 지금까지의 시간과 들인 공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제안서를 들고 체육부 대외협력국장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