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Choi wungsub Succes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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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응답된  줄  알고,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돈을  쥐어주곤  했다.  무려  3 개월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보냈고, 마침내  원하던  회사 설립인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산  넘어  또  산이  있었다.  서류상으로  7 개  정도의  업종을  써넣어서  회사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업장을  열기  위해서는  별도로  관련  부처의  승인을  또

               받아야  했다.  당시  회사  설립  정관에  넣은  업종은  여행사,  컴퓨터학원,  앨범제작,  무역업  등  총
               7 가지였다.  그  종목들  중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  하던  끝에  컴퓨터  학원을
               열기로 결정했다. 컴퓨터학원은  교육부 소속이었으며, 동시에  외교부의  인허가도 받아야 했다.
               먼저  교육부에  가서 학원  설립인가를  요청하고  면담을 했다.
               “사업자금은 어디서 나옵니까?”
               “투자 금액은 얼마입니까?”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우리  아버지가  한국에서  엄청난  부자(?)인데,  먹고  살  돈과  학원  운영에  필요한  돈은  기도하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면접관이 봤을  때, 이상야릇하거나 괴이한 답변으로 면접을  마치고 나왔던 것 같다.
               외교부에서는 한 술 더 떴다.
               “한국에서  컴퓨터학원을  운영한  경력이나  컴퓨터학원  교사로  일했던  경력  등  필요한  서류를

               가져와서 외교부 인증을  받아  제출해주세요.”
               컴퓨터  학원을  운영해본  경력도,  컴퓨터  교사로  일해  본  경력도  없었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실전과  실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군  복무  시절로  잠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컴퓨터가  낯선  기계  덩어리로  인식되던  1984 년에  이미  컴퓨터를  구입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컴퓨터는  8 비트였고,  안철수  교수가  안철수  바이러스를  만들기도
               전이었다.  오피스나  한글  프로그램도  없었고,  보석글이나  하나  워드  같은  프로그램들이  플로피
               디스크를  통해  무료로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군대  하사관  숙소에  컴퓨터를  놓고  공부를  하는데,

               하루는 보안 사령부에서  호출이 왔다.
               “컴퓨터가 무슨 기계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왜  군대에서 필요한가?  혹시  간첩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심문이  이어졌다.
               “북한이  컴퓨터  전문가를  보낸다면  육본이나  국방부  혹은  보안사에  보내지  왜  전방  골짜기에
               보내겠습니까?”
               나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던지,  보안사  대장은  심문을  마치고  나를  풀어주었다.  그로부터  4 년  후,

               88 올림픽이 끝나자  사단사령부에도  컴퓨터가  보급되었다. 올림픽 행사에  사용하던 컴퓨터를 전방
               사단사령부  급에  10 대씩  보내준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컴퓨터를  사용해본  병사들이
               극소수였고,  예산처  병사나  장교들만  조금  만질  줄  알던  시기였다.  마침  내가  컴퓨터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정훈처는  배급  받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문서  작성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른  부처는  컴퓨터를  보급  받고도  사용을  못하고  있었다.  군  제대  후,  사이버신학교를
               운영한  바  있는데,  당시  한국에서  인터넷  ‘사이버대학’이라는  용어를  내가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  유니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에서

               사이버신학교를  운영하였으며,  C++,  Basic  각종  프로그램,  포토샵,  오토캐드,  홈페이지  제작  등
               컴퓨터에 대해  두루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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