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Choi wungsub Succes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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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을 통해 자신 있는 분야라고 여겼기 때문에 컴퓨터학원을 열기로 했다. 실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급한 것이 서류였다. 컴퓨터회사를 운영한 증명서나 학원에서 가르친 증명서를
가져 오라니 앞이 캄캄했다. 서울의 아는 분들과 후원교회 등 여러 곳에 부탁도 해보고 요청도
했지만 허사였다. 거짓으로 서류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전주
안디옥교회에 부탁했다. 마침 그 교회 성도 중 한 분이 전주에서 컴퓨터학원을 운영하는데,
증명서를 발급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공증 받는 문제가 남았지만, 그것 역시 해결해 줄 테니 걱정
말라는 그곳 집사님의 말씀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렇게 발급 받은 서류는 주한 러시아대사관을
통해 러시아로, 러시아에서는 주러 아제르바이잔대사관을 거쳐 이곳 외교부에 도착했다. 또 다시
한 달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회사 설립인가 때의 3 개월을 포함해 컴퓨터학원을 열기까지 총
4 개월을 공들인 것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인허가를 받은 나는 컴퓨터학원이 들어설 사무실부터 마련했고, 사무실을
채울 컴퓨터를 구하기 위해 바쿠 시내 전 지역을 돌아다녔다. 컴퓨터가 있을 만한 곳을 다
다녔지만 제대로 된 컴퓨터를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 따는 수준이었다. 구입한 5 대의 컴퓨터도 한
상점에 비치되어 있던 전량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바쿠 시내 전체에 5 대의 컴퓨터만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전량 구입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전 신문과 지하철에서 컴퓨터학원
홍보전단지를 돌렸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한국 컴퓨터학원을 연다’는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한국인선교사들과 함께 학원 개원예배를 드리고 본격적으로 수강생을 모집하였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개강하자마자 50~60 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바쿠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이 운영하는
컴퓨터학원이라는 입소문이 돌았던 덕분이다. 개원 첫 달 수입이 3 백 달러였다. 당시 3 백 달러는
우리나라 돈 50 만 원 정도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주 좋은 아파트 한 달 집세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 그때만 해도, 3 백 달러짜리 사업이 10 년 뒤 3 억 달러로 성장하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컴퓨터학원에서
시작된
가정교회
컴퓨터학원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면서, 내가 이 나라로 부름 받은 목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주특기인 전도를 시작한 것. 웃기지만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당시 나는 직원들에게
‘하나님’ 같은 존재였다. 실업인구가 많아 직장 잡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자리를 얻었다는 것,
그것도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신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컴퓨터학원이라는 직장에서 선생님으로 대우를 받게 되니,
직원들은 내가 하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정도로 ‘최바라기’로 일했다. 그래서, 대담하게 용기를
냈다.
“수요일 오후에는 수업 스케줄을 잡지 말고, 다음 과목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갖기로 합시다.””
그렇게 매주 수요일 모임을 가지던 어느 날, 성경을 들고 나갔다. 다들 의아해했다.
“이 성경은 친구가 준 것인데 내가 읽기가 너무 어렵네요, 여러분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읽어주고
내용을 설명해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