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Choi wungsub Succes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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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명에그들  모두  쉽게  수긍했는지,  체육부  차관이  5 일  이내로  디자인  콘셉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즉시  서울에  연락해,  나흘  안으로  축구장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건축사사무소와
               협의해  4 일  안으로  설계안을  만들어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수시로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4 일  째  되는  날,  메일로  디자인한  콘셉트가  날아왔고,  그  디자인  콘셉트를  체육부  장관에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나를 믿어주었던 대로  내년 3 월 15 일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나의  호언장담이  통하여  영부인에게도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차관  2 명과  함께  한국으로  날아가
               공장시설들을  보여준  뒤  계약하게  되었다.  당시‘유로비전  송  페스티벌’을  위해  두  군데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였다.  하나는  독일회사의  기술진과  대통령  비서실장의  회사가  단독으로  맡아
               진행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무려  7 개  나라의  입찰을  제치고  단독  수의계약으로  축구장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누가  봐도  빛이  나는  대형  공사지만,  사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어려움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남모르게  흘린  눈물도  많았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의  규모가  매번  점점  커져왔다.  그때마다  새로운  두려움  새로운  공포가  짓눌렀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번에  또  다시  내  사업사상  최대의  공사를
               도맡았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파도가  되어 몰려왔다

               ‘과연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나라 망신시키는 것은  아닌가?’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마다  도지는  불안감의  병이  시시각각  엄습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고,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주님밖에 없었다.
               리모델링해야  하는  축구장은  60 년  된  낡은  축구장으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미  그때는,필요한  모든  재료를  한국에서  들여와  사용하겠으며  1 년  이내로
               리모델링을  마무리하겠다고  영부인에게  보고한  상태였다.  영부인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으나,

               어쨌든 무리하지 말고 잘  해달라 격려하고 부탁해주었다.
               한국에서  컨테이너  3 백 50 대를  공수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를  위해  대한항공  화물  전세기까지
               동원했다.  한  번에  65 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전세기를  한  번  운항하는  데  15 억  원이  들었다.
               그런  전세기를  총  4 번이나  띄워  필요한  장비들을  공수해  왔다.  손해를  보더라도  공정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기존  2 만 8 천  석을  3 만 2 천  석으로  확장,  마침내  초현대식
               스타디움이자  FIFA 와  유럽규정에  맞는  축구장으로  완벽하게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  축구장

               역시  이제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새로운  국가 랜드마크가 되었다.
               “최웅섭이 미친 모양이다.”
               “건설의  ‘건’자도  모르는  사람이 축구장  건설을 한다.”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아제르바이잔에  진출한  몇몇  한국기업  지사장들이,  사기꾼이나  브로커라는
               이름으로  나를  헐뜯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도  못하는  일을  하니까  배가
               아팠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러  모양으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한국대사관의
               이지하대사는 많은 격려와 함께 서류  공증 등의 행정적  절차를 밟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일을  진행하는  내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하도급  회사들을  철저하게  검증해  준비했고,  내
               방식대로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소장,  측량,  건설,  토목,  전기,  공조  등등의  사람들을
               채용하여  그들의  책임  하에  공사가  이루어지도록  분권화하였으며,  5%  지시하고  95%  감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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