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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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공산주의에 공명하게 했으니 대정 11년(1922년) 10월 러시아령 우진
스크에서 조선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가 대립하여
각기 헤게모니 파악 문제로 파쟁이 일어나자 이를 조정할 목적으로 조선
내 공산주의자 대표의 “만라-르” (러시아어 만다트(манда́т)로 신임장)
를 가지고 경성을 출발한 것을 기점으로 러시아공산주의 실제 운동에 발
을 들여놓은 이래 체포 당시까지 공산주의 운동에 활동한 것이다.
우진스크에 도착하여 양 파 조정을 꾀하였으나 실패하고 코민테른 중앙
집행위원 “구-시넨”과 “부하-린”으로부터 조선공산당은 당내 파쟁을 청
산하여야 할 것이라는 충고를 받은바 이는 그로 하여금 그의 장래활동에
있어서 큰 영향을 주었다.
대정 12년(1923년) 7월 러시아공산대학을 졸업하고 즉시 해삼위(블라
디보스토크)에 가서 “꼬르뷰로”, 즉 고려공산당의 명령을 받아 경성에 잠
입하여 공산주의 운동단체조직을 획책하여 경성노동조합을 표면에 내세
우고 비밀단체 조선노동총동맹준비발기회를 조직하였으나, 비밀단체로
는 공작이 불가능하므로 무산청년회와 화요회를 병합한 신흥청년동맹과
서울청년회를 연합할 계획을 써서 대정 13년(1924년) 4월 조선청년총동
맹을 조직하고, 대정 14년(1925년) 4월 17일에는 경성 아서원에서 김재
봉, 김찬, 김약수, 유진희, 주종건, 송봉창, 김상주, 조동우, 윤덕병, 독고
전, 최원택 등 17명이 모여 처음으로 조선공산당 창립회를 열었었는바
20일에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그 조직에 있어서 도위원회 부/군위원
회 “야체이카”를 두고 대회는 연 1회 중앙집행위원회는 월 1회 개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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