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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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에는 정당원 후보 당원의 두 가지를 둘 것을 결의하였으며, 같은 달
19일에는 경성부 훈정동 4 박헌영 방에서 권오설, 김찬, 임형관, 안상훈,
김단야 등 10여 명이 집합하여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한 후 국제공산당
지부로서의 권위를 위하여 코민테른의 승인을 얻고자 같은 해 5월 1일 조
봉암이 그 직무를 띄고 우진스크에 이르러 사방으로 활동하여 9월 상해에
서 조동호 등의 조력으로 그 승인을 받아 귀성한 후 대정 15년(1926년) 4
월 21일 민중대회가 금지당하자 적기를 들고 데모를 한 일도 있으며, 15
년에는 만주에 이르러 만주총국을 조직하였으며, 소화 2년(1927년)에는
상해에 있는 조선 민족주의자들의 악수를 원하여 유호한국독립운동자동
9)
맹을 조직하였는바 이로부터 동지간에 그는 우익적 경향을 가졌다고 보
게 되었는바 그 후 소화 6년 12월 3일(1931년)에는 상해한인반제동맹을
조직하는 등 공산주의 운동에 헌신 활동을 하여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상해 조선인 반제국주의자동맹을 조직하
였었으나 조선에는 공산당이 있어야 하고 한 번 취소된 것이라 하나 파별
쟁투를 청산하여 다시 국
제 공산당의 승인을 받아
야 하겠다는 신념으로 김
명시, 김경선 등을 파견하
여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을 하다가 잡힌 것이다.
9) 유호한국독립운동자동맹결성은 1929년 10월이다.
110 竹山 조봉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