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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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일, 「동아일보」는 2월 25일 기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조봉암을 주목하
                 여 “공당 이면사를 일신으로 구현한 조봉암 활동 전말”을 게재했다.




            “공당 이면사를 일신으로 구현 조봉암 활동 전말”

            (「동아일보」, 1933년 6월 2일 2면)

            공산당 이면사 그대로인 조봉암의 활동 전말을 보면 이번 사건의 전모
           를 포착할 수가 있다. 강화출생으로 동경에 갔다 와서는 인삼 행상을 하

           면서 그의 주위 환경으로 인하여 공산주의에 공명하여 공산주의자들의

           파쟁을 조정할 목적으로 “우진스크”에 갔었다. 파쟁 조정을 못하고 “부하

           린”으로부터 조선 내의 공산운동은 파쟁을 청산하여야 할 것이라는 충고
           를 받은 것이 중요한 방향의 지침이 되었다. 대정 12년에 러시아 공산대

           학을 마친 후 즉시 해삼위에 가서 고려공산당의 명령을 받아 경성에 잠입

           하여 무산청년회와 화요회 연맹을 조직하고, 14년 4월 17일에 경성 아서

           원에서 김재봉, 김약수, 김찬 등 17명이 모여 조선공산당을 조직하고, 같
                                             은 달 19일에는 경성부 훈정동

                                             박헌영의 집에서 권오설, 김단

                                             야 등 10여 명이 모여서 고려

                                             공산청년회를  조직하여  국제

                                             당의 승인을 얻으려고 우진스
                                             크에 가서 활동하여 9월에 그

                                             승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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