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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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조선일보」는 조봉암의 경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처음 당 조직 지도 후, 러시아, 만주, 상해서 대활동

                    상해사변에 격문까지 배포선동”

                    (「조선일보」, 1933년 9월 25일 석간 3면)

                    조봉암은 일찍 강화태생으로 군청고원 대서소원 등으로 있다가 대정 9
                   년경에 일본 정칙영어학교에 입학했다가 이듬해에 중앙대학에 입학하여

                   고학으로 공부를 계속하고자 했으나 뜻 같지 못하여 중대를 퇴학한 후 김

                   찬, 정재달 등과 교우하게 되자 공산주의에 공명하게 되어 경성에 돌아온

                   후 대정 11년 7월경에 견지동에서 정재달 등과 회견하고 당시 조선 공산
                   주의자의 그룹 이동휘(李東輝) 일파가 지도하는 상해파와 한명세(韓明世)

                   일파가 지도하는 이르쿠츠크파 등의 파벌적 행동을 배격하고, 전기 그룹

                   등을 연합하여 단일당을 조직할 것을 꾀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그해 10

                   월 우진스크에서 국제공산당의 지령으로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의 연합
                   대회가 개최되어 이에 참가하여 회의를 거듭하던 중 양파의 분쟁으로 전

                   기연합대회가 결렬되자 이들 단원을 규합하여 조선공산당 총국을 조직

                   하고 러시아령에 체류하여 공산대학에서 이론을 연구하다가 대정 12년

                   에 전기 대학 속성과를 졸업하고 해삼위에 와서 고려공산청년회 총국에

                   가입하고 지령으로 그해 말 경성에 잠입한 후 동지 획득에 노력하다가 대
                   정 14년 4월 17일 황금정 아서원에서 김재봉, 김찬, 김약수, 최원택 등,

                   16명과 회합하여 조선공산당을 조직한 후 그 검사위원이 되어 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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