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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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5일, 신의주에서 열린 조봉암의 재판 정경에 대해 「조선일보」는 다음
                 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공판 벽두 조봉암 피고 회의를 요구

            친지가족으로 법원은 인해화”

            (「조선일보」, 1933년 9월 26일 조간 2면)
            【신의주지국특전】 조봉암 등 16명의 단일공산당 사건에 대한 공판은 기

           보한 바와 같이 25일 오전 11시부터 신의주지방법원에 국지(菊地)재판장

           심리와 곡전(谷田)검사 입회로 개정되었는데 변호사석에는 신의주에서

           온 최창조 씨와 평양에서 온 김지건 씨가 임석하였다. 개정 전부터 운집
           한 피고의 친구와 친족은 수백 명이나 되고 형무소로부터 재판소까지의

           연도에는 물샐 틈 없이 비상한 경계를 하며 정내 정외는 이상한 긴장 속에

           개정하였다. 법식에 의하여 피고의 주소, 성명의 심문을 하였는데 피고 중

           여성으로는 오직 하나뿐인 김명시는 재판장이 주소 성명을 묻자 주소는
           신의주형무소이고 직업은 ××운동이라 대답한 것 외에 별일 없이 끝나

           고, 다음 전피고로부터 각기 예심조서와 사실과 상위 되는 점이 많다고 진

                                  술하였다. 그리하자 조봉암이 일어나, 피고

                                  회의를 개최하여 답변위원 세 사람과 답변

                                  자료 제공위원 네 사람을 선출하여 이 재판
                                  의 심리를 진행하자는 요구를 하였는데 국지

                                  재판장은 다만 고려하여 보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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