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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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여파로 피체(被逮)되어 신의주 감옥으로 잡혀가시고, 이듬해에 어머
           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귀국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가시고 말았

           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여섯 살이었던 나인지라 어머니가 더욱 그

           리운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나이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7년이라는 기나긴 감옥살이를 마
           치고 그 추운 신의주 감옥에서 살아서 나오시니, 그 후로 아버지의 혁명 동

           지였던 큰 어머니 김조이 여사가 나를 키워주셨지만, 6·25 동란 때 납북되

           어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렀던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그 엄혹한

           시기에, 겉으로는 생업에 몰두하는 척하면서 국제정세를 살피고, 동지들

           과 연락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아버지를 일본 헌병은 치안에 위험인물이라

           고 하여 기어이 다시 잡아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일제의 헌병사령부에서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감히 입에 담기도 죄송한 친일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어딘
           가에 있다고 하니 이 늙은이에게 또 하나의 한(恨)이 되어 죽어도 눈을 감

           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오유석 교수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노력하여 여러 곳에 흩어진 기

           록을 찾아내어 하나의 책으로 엮어주시니, 사람들이 아버지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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