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0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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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있을 마침 그때 당시 경성에서 사회주의운동에 분주하고 있는 함
경남도 명천군 출신 김찬 및 충청남도 진천 출신 정재달 등과 교류하고
또 동인 등으로부터 현재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유재산제도이기 때문에...
(원문 한 페이지 누락)
비서 김립을 소도(蘇都)로 향하던 중 러시아령 치타에서 박진순은 김립
과 해후하여 40만원을 건네어 함께 상해에 돌아갔다. 이동휘 일파는 그
자금은 동양사회당에 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조선 내에는 겨우 7만원 정
도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상해가 가(임시)정부에도 납부하지 않아 전
부 유야무야하게 처분되어 마침내 그 운동자금을 둘러싼 분쟁을 야기한
것뿐만 아니라 그 충동을 받아서 1921년(다이쇼 11년경)에 이르러 김철
훈, 남만춘, 이성, 최동순 등은 이르쿠츠크에서 대회를 개최(상해에서는
안병찬, 고창일 등이 출석함)해서 고려공산당을 조직하고 국제공산당에
보고했다.
(소위 이르쿠츠크파)
그리고 한편 이동휘, 김립, 현정건, 김학우 등도 전기 소위 이르쿠츠크파
와 때를 같이하여 상해에 고려공산당을 조직하고 이르쿠츠크파에 대항했
다. (소위 상해파) 이리하여 양파의 내분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여 국제공
에서도 그 성행을 우려함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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