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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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놓고 논의했지만 역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곳에 딸린 원주 들은 틈이 날 때마다 이른 바 아름답다고 하는 교회나 잘 지
민 4가구의 집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었다는 신축 교회를 여러 군데 방문하곤 했다. 그 교회의 담
제 그러던 중 1991년 2월10일 동작구청 뒤 노량진 2동 314-29,30에 임목사나 관계자를 만나 건축에 관한 얘기나 좋은 의견을 들
4 위치한 대지를 찾아냈다. 일반주택 여러 동을 한 필지로 묶을 수 있는 으며 가슴을 설레이곤 했다. 저마다 메모를 하거나 상상의
장
일
산 땅이었다. 건축위원들은 그곳이 “교회 위치로 적합하다”는 데 의견을 날개를 펼쳐보곤 했다.
시 대 모았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에서 협의 후 제직회에 상정하여 그 땅 “아, 여기는 거기를 유아실로 했네!...”
을 매입하기로 하였다. 대지 257평으로 가격은 8억3천2백만원이었 그러면서 우리 교회에 들어설 본당, 유아실, 방송실, 특별
다. 명의는 ‘최정근 건축위원장’ 이름으로 계약하고 부가된 세금은 교 실의 위치나 이미지 따위를 마음 속으로 그려보곤 했다.
회 부담으로 하며 등기를 필한 뒤에는 교회로 기증하는 방식으로 진 운영위원회와 건축위원회는 그 당시 교회 건물도 이미 많
행하도록 정리했다. 이 수주해오고 있고, 건축 설계로 이름이 난 ‘다원건축 설계
그러나 계약한 노량진 대지는 1년이 지나도록 건축허가를 받지 못 회사(소장 이혁휘)’와 계약을 맺었다. 유명한 건축설계회사
했다. 이 때문에 건축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면서 걱정 인지라 설계비부터 만만치 않았다. 담임목사와 건축위원장
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마침 일산에서 건축업을 하고 있던 최 은 우리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소장에게 설명하며 ‘최대한
정근 장로를 통해 ‘일산 신도시 종교용지 분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감안해 주십사’ 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전해 듣게 된다. 그렇게 기대했던 노량진에서의 성전건축이 아닌 일 다원건축은 수시로 건축위원들의 요구를 듣고 그 의견을
산에서의 성전건축이라는 방향전환을 하나님께서 지시해준 것이다. 최대한 설계에 반영하였다. 교회가 요구한 설계구상은 이런
1992년 4월12일 공동의회를 열고 ‘일산 신도시 이전’에 대한 찬반 논 것들이었다.
의를 한 결과 찬성56, 반대10, 기권8로 일산에서의 성전건축으로 최 “본당은 지상인 3층과 4층에 배치해 주세요. 왜냐하면, 아
종 결론을 내렸다. 무래도 성도들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외부로
예배소리가 나가는 걸 막는다고 지하로 하는 건 아무래도 아
우리 교회가 분양 신청하여 불하받은 일산신도시 종교용지는 일산 닌 것 같아요. 게다가 공사비도 더 절약할 수 있어요.”
신도시 4차 개발지역으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대화동 53블록 종교용 “지하 2층엔 주차장과 기계실, 지하1층엔 식당과 주방 그
지 32번의 825평방미터의 땅이다. 당시 불하받은 용지의 대금은 4억 리고 교육관을, 1층엔 사무실과 유치원, 2층엔 교육시설과
3천9백만원이었다. 그 대지 위에다 건축할 수 있는 건물은 지하 2층, 소예배실, 안식관 그리고 목양관을 두는 것으로 해주세요.”
지상 최고층 4층, 총 6층이었다. 허가 건평은 최대치 총 893평으로 종 “종탑은 건축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높이 올려 십자가
탑 부분까지 약 1,000평에 이르렀다. 가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설계해 주세요.”
“건물 전관 바닥에 온돌보일러를 깔아주세요. 장차 남북
기공예배 통일이 되어 북한에서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려올 경우 바닥
2) 공사 계약과 기공예배 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다원건축은 최선을 다해 우리 건축위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설
우리 교회가 일산 신도시에 성전건축을 하기로 결정한 뒤 건축위원 계를 최대한 성실하게 해냈다. 그 결과 상주감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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