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3 - 일산교회 60주년사
P. 363
제 페스트(黑死病, Black Death, 1300-1353)은 역사에 기록된 최악 면서 ‘오직 성경(sola scrip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
5 장 의 전염병이었습니다. 유럽 지역에서 1346~1353년 사이 절정에 도달 (sola fide)’의 새로운 교회개혁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혼란
했고, 이 시기에 흑사병으로 유럽 총인구의 적게는 30% 많게는 60% 스러운 유럽교회 앞에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프랑스 대혁명
6
0 을 주 년 가 사망했다고 추정합니다. 흑사병 이전 세계 인구는 4억5000만명이 은 곳곳에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오래된 체제)을 상징하
었는데 14세기를 거치며 3억5000만명~3억7500만 명 정도로 거의 1 는 가톨릭교회를 파괴했습니다.
맞 는
억 명 이상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교회사적 대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코로나19가 바꿔 놓을 세
일 회 교 산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기, 내적 평화를 찾으려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 상을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19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의 육체에 고통을 가하며 하나님의 참회를 받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기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세상을 계획해야 할 것 같습
도 했습니다. 또 교회가 맞이한 변화 중에 중요한 것은 성직자들의 급격 니다. 새로운 세상은 이미 와 버렸고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끝나
한 감소였습니다. 페스트로 수 많은 성직자들이 숨지면서 라틴어를 읽 도 세계는 이전과 전혀 동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 교회의 역
고 쓸 수 있는 성직자들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 할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의 대답으로 위기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앞
어 등 자국어 기록이 늘어나면서 종교 안에서 ‘민족주의’가 싹트는 계기 서지 못하는 교회는 세상의 무덤이 된다는 유럽 교회들의 역사 사실
가 마련되어 이후 종교분열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결국 교황의 권위 추 을 교훈삼아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락과 성직자와 수도자들 사이의 윤리적 방종, 평신도 사이에 퍼져 있는 “페스트는 죄에 대한 심판이다. 면죄를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거짓 신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의 쇄신과 개혁이 필요했습니다. 있다”고 외치며 거둬들인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축을 진행했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페스트는 맹위를 떨쳤습 던 것에 저항하여 일어난 것이 프로테스탄트 운동, 종교개혁의 시발
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서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가 흔들리고, 인간 점은 페스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로마교회가 자초한 혁명입니
은 신의 무력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철학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면 다. 면죄부 판매는 가톨릭에 대한 민심의 이반을 더욱 더 가속화시켰
서 그때까지 신 중심의 철학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무게 중심을 고, 동시에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를 갈구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이동하게 되면서 시대정신의 변화를 선도합니다. 제도적인 교회에 대 지점에서 종교개혁이 강력한 동기부여와 지지를 받게 된 것을 보면서
한 불안과 불만 팽배했고,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성사적인 교회 페스트가 종교개혁의 방아쇠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에서 떠나 영적인 ‘보이지 않는’ 교회, ‘내면의 성전’을 향한 강한 열 이 종교개혁의 최선두에 마틴 루터, 그는 이 전염병으로 가족들을
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열망은 14세기 그리스도교회의 영성 떠나보내는 가슴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1505년 흑사병으로 그의 두
이 관상과 신비 체험으로 지향하게 했고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 동생, 하인츠(Heintz)와 베이트(Veit)를 잃었습니다. 또 수녀 카타리나
해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습니다. 폰 보라와 결혼한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으나, 1527년에 큰딸 엘리
이처럼 페스트는 중세를 마무리 짓고 근대를 탄생케 했습니다. 지 자베스를 8개월 만에 잃고, 1542년 둘째 딸 막달레나조차 13살에 사
배층과 성직계층의 몰락과 혼란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으로 분출 망합니다. 이런 가슴 아픈 경험을 가진 루터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목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혼란은 르네상스가 꽃피는 계기가 회자적 입장을 밝힌 작은 저서 「치명적인 전염병에서 도망가야 하는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을 위한 로마 교회의 내부분열이 가?(1527)」를 내놓습니다.
었고 하나의 운동이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아우구스티노 수도 그는 이 책에서 전염병에서 도망가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단정했습니
회의 사제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문에 내걸 다. “얼어붙은 날씨와 겨울도 하나님의 형벌이며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362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