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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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인원은 55명(남24, 여31) 으로 집계되고 있다. 침체된 교회 모습                                                                                 에 의해 1949년 5월22일에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이 점차 정상으로 회복돼 갔던 것이다.                                                                                                     교회와 인연을 맺으셨다. 성경말씀에 박식하고 능통
    제
   2 장                               최광석 전도자가 심혈을 기울인 주요 대상은 학생회다. 최 전도자                                                                                     하여 이단을 물리칠 정도였다. 늘 확신에 찬 말씀으
      북                            는 학생들이 예배에 적극 참여토록 독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로 성도들을 감동시키곤 하셨다.
    동 아 현
                                   그 예로 매월 마지막 주일 오후예배는 학생회 헌신예배를 올리고, 저                                                                                        임 목사는 우리 교회 초대 목회자가 이루어놓은

                                                                   25)
                                   녁 예배는 ‘통상의 밤’을 개최했다.  또한 늦가을엔(주로 11월 초순)                                                                                  기반이 다소 흔들렸던 시기에 오셔서 말씀으로 성도
     시 대
                                                                         26)
                                   ‘영상의 오솔길’이란 제목으로 문학의 밤  행사를 진행하면서 교회                                                                                      들의 마음을 일으키는 큰 역할을 하셨다는 평가를
                                                                                                                     임봉수목사와 안점석, 이상호집사
                                   예산으로 비교적 많은 경비를 지원해주셨다. 더 파격적인 것은 오후                                                                                      받는다. 임 목사는 매년 교회 운영방침을 공개하여
                                   예배나 수요예배 때 학생들에게 예배위원으로서 대중기도(오늘날의                                                                                        성도들이 사역에 동참토록 잘 안내해 주셨다. 그리

                                   대표기도)를 맡기셨다. 지금의 예배 문화로는 생각도 못할 정도의 파                                                                                     고 우리 교회 최초로 네 분의 장로를 장립하셨고 믿
                                   격적인 일이지만, 당시 이런 시도는 다른 한편으로 가족예배 같은 분                                                                                     음의 공동체에서 그 유기적인 조화와 협력이 더없이

                                   위기 속에 또 다른 은혜가 넘쳤다고 회고하는 성도들도 적지 않다.                                                                                      필요한 교회의 조직체계도 잘 확립했다. 제직회, 각
                                     최 전도자의 가족 거주공간은 좁은 교회 안이었기에 생활하기가 적지                                                                                    부서, 구역집회, 교회학교 등의 체계가 제대로 세워

                                   않게 불편했다. 최 전도자의 어린 딸이 농아였다. 그래서인지 당시 사모                                                                                   졌다. 원칙과 기준을 중시하는 목회를 구현하고 실
                                   님 얼굴이 늘 수심에 차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하는 이도 있다. 안타까운                                                                                  천하셨다.
                                                                                                                     임덕희 전도자 졸업식 (1971년도)
                                   점은 최광석 전도자의 목회스타일이 독단적인 면이 있는데다가 성도들                                                                                         임 목사는 성경의 초대교회 모습처럼 그리스도의
                                   사이에 목회자에 대한 호불호가 생겨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                                                                      교회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에 따라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환

                                   속에서 결국 최전도자는 3년 만에 우리 교회에서의 사역을 마치셨다.                                                                      원운동을 주창하셨다. 성만찬 예식과 성령운동, 말씀 세움을 주요 목
                                                                                                                                              회방침을 세우고 시행하셨다.

                                                                                                                                                임 목사는 원래 악기를 쓰지 않는 우리 교회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3) 1970년대의 목회 현황 - 성장 동력의 목회                                                                               얼마나 찬양을 은혜롭게 올릴 수 있는지 구현해내셨다. 그동안 그리

                                                                                                                                              스도의교회는 찬송에 악기를 쓰지 않기에 찬양이 좀 밋밋한 편이었
                                   임봉수 목사    27)                                                                                              다. 임 목사는 ‘찬송가 바르게 부르기’와 가스펠송을 많이 지도해주셨

                                                                                                                                              다. 이 때문에 보다 더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송과 찬양에 목말라하던
                                     임봉수 목사는 대구그리스도의교회에서 사역하다가 1971년 6월 우                                                                     성도들이 매우 좋아했다. 임 목사는 성악에도 달란트가 있어서 악기

                                   리 교회에 오셨다. 그리스도의교회를 초기에 전파하신 동석기 전도자                                                                       없이 아카펠라로 찬양을 리드하시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가 넘치곤 했
                                                                                                                                              다. 그는 성도들이 찬송과 찬양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제대로 부르

                                                                                                                                              게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격려하셨다.
                                   25) 통상의 밤은 2명~4명의 학생 연사가 성경적 주제를 갖고 간증적 토론을 하며 은
                                      혜를 나누는 시간                                                                                                 “천국 가면 주님 옆에서 찬송 부를 일 밖에 없어요!”
                                   26) 1967년 11월3일 제1회 문학의 밤이 열리고 그 뒤 매년 행사가 끊이지 않고 노량
                                      진 시대까지 26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27) 임봉수 담임 목회자가 취임하면서 전도자 호칭에서 목사로 바뀌게 됨.                                                                    임 목사는 강단에 평신도도 세워 말씀을 증거하도록 허용하셨다.

           86ㅣ1962-2022 일산그리스도의교회 60년사                                                                                                                                            은혜의 60년을 넘어 새시대로ㅣ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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