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일산교회 60주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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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운영 담당, 교회학교 담당, 구역예배 당담 등을 맡게 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에 강순혁 목사가 부임하면서 교회 성장을 위한 기도
보다 효율적으로 하나님 사역을 이루어나가게 하였다. 회가 뜨겁게 이어졌다. 당시 30평 남짓 되는 예배당은 수용인원이 70
제
2 장 1975년도 교회 운영방침을 살펴보면 명 내외에 지나지 않았다. 보다 넓은 예배당 터를 확보하기 위한 기도
북 표어는 ‘모이기를 힘쓰자’<행2:46. 히10:24~5> 회가 강 목사의 주관 아래 전 성도가 합력하여 7개월 이상 지속되었
동 아 현
표어에 따른 실천요강으로는 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셔서 1980년 7월1일 노량진1동 205-
1. 기도는 매일 한 시간 이상하자<골4:3> 196 자리의 건물을 매입하여 ‘노량진중앙교회’의 이름으로 이전하게
시 대
2. 성경은 매일 한 장 이상 읽자<요5:39> 되었다. 교회의 이름은 지역이름을 붙이는 것이 성서적이기에 ‘북아
3. 연보는 십일조 이상 하자<마23:23> 현동’ 대신에 ‘노량진’으로 바꾸어 ‘노량진중앙그리스도의교회’로 호
4. 전도는 매년 한 사람 이상 하자<고전9:16> 칭하였다. 창립 이후 목회자와 성도들의 든든한 믿음과 교회 사랑으
5. 이해와 관용으로 단합하자<엡4:23> 로 행복하게 이어져온 18년의 북아현동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6. 방관자가 되지 말자<삿5:23> 노량진에서의 새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7. 하나님 일부터 먼저 하자<왕상17:13>
이상의 표어와 실천사항을 정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올바르게 양육
하기 위한 목양을 실시하셨다. 5) 북아현동 시대의 목회 동역자
임 목사는 또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환원운동을 주창하시고 성경 1960년대엔 부교역자를 세우지 않고 초대 목회자인 이영진 전도
대로 행하여야한다고 강조하셨다. 28) 자의 학연이나 신앙적 관계를 갖고 있는 분들이 무보수로 교회 사역
1. 성경에 있는 것을 말하고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며 성 을 도왔다. 이호열, 김세복 형제는 예배위원과 청장년 성경공부 교사
경이 침묵한 것은 침묵한다. 로, 고길상 형제는 어린이교회학교 지도자로 봉사하셨다. 나중에 이
2. 본질에는 통일이 있어야 한다. 비본질에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호열 사역자는 춘천그리스도의교회 담임목회자로, 김세복 사역자는
모든 일은 사랑으로 하여야 한다.<골3:14> 신학 공부 차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68년엔 서대문교회에서 이적
하신 박호흠 집사가 예배와 학생회 교사로 사역을 도왔다.
그리고 효율적인 교회 운영을 위하여 각 부별 시행규범과 세칙을 정식으로 부교역자인 교육전도자를 두게 된 것은 1960년대 후반으
정하였고, 목회자를 비롯한 사역자와 직분자들의 실천요항을 만들었 로 방화동 교회 출신인 이찬우 전도자가 그 시작이다. 이 전도자는 학
다. 이 가운데에는 특이한 사항으론 <권계>란 항목을 두고 있다. 성도 생회 지도교사를 맡아 학생들의 신앙심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1970
중에 과오를 범했을 때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며 사랑 년대 초기엔 그리스도대학에 재학중인 이봉훈, 우채수 신학생이 교육
과 겸손한 태도로 선도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성도는 누구를 전도자로 임명받아 장년예배와 교회학교 관련 사역을 맡아 봉사하였
막론하고 교회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라는 제안항목까지도 다. 1974년엔 신주범 전도자가 부교역자로 오게 되었는데, 임봉수 목
두었다. 그처럼 교회운영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실행되도록 했다. 사 후임으로 1978년도부터 정식 담임목회자로 사역하게 되었다. 1975
년도엔 박양호 전도자, 1976년엔 이명교 전도자, 1978년엔 최제봉 전
28) 위 내용이 우리교회 정관 제1장 제3조(정신) 3항에 들어있다. 도자가 교육전도자로 사역을 하였다. 1979년엔 최용철 전도자와 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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