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전시가이드 2022년 12월 이북
P. 44
행복초대석
손미라 作_내 마음의 풍경, 35cm×27cm, Acrylic on canvas, 2020
수필가 장소영의 그대 이름은 도루묵 여사
자박자박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저녁 무렵. 연휴 마지막 날이라선지 유 아가 보면 모두가 내 탓이오! 생각하는 허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히 창밖 도로에서 차들이 줄이어 엉금걸음을 하고 있다. 하루해가 저물면 생 남편의 코치를 받아 가며 운전 연습이란 것을 시작한 지도 한 4년쯤 되었던
활에 배어든 먼지를 털어내고 안온한 안식처를 찾아감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때였을까. 주행 연습부터 시작해 어찌 어찌 면허증은 손에 쉽게 들었는데 그
타고난 본성이라 했으므로 저 기어가는 불빛들도 나름은 서두르는 모양새다. 다음부터가 문제였던 것이다. 애당초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한다니까 윗동
능숙하게 도로 위를 내달리는 뒤꽁무니의 빨간빛은 매번 액자 속의 그림같이 서며 친구며 모든 선배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반대 일색이었다. 남편에게 운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전 배우다 이혼한 사례도 있다면서 그냥 돈 주고 배우라는 위협적인 경고까
“도루묵 여사! 차키는 어디 있나?” 지 해오는 것이었다.
“도루묵 여사님, 간식 좀 주세요.”
싱그레 웃으며 말들을 건네지만 그 표정들은 우스워 못 견디겠다는 얄궂은 감 하지만 운전면허 시험장까지 따라와 열심히 응원해 줬던 남편의 인내심과 배
정이 슬쩍 스쳐간다. 려를 나 아니면 누가 헤아려 줬을 것인가. 이미 수십 년의 베테랑, 운전에 있어
도루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도루묵과의 바닷물고기, 몸길이 15-20cm. 등 서만큼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던 초보자의 소심한 믿음을 그 누가 알았
은 황갈색. 배는 은백색. 비늘 없음. 식용함.’ 이렇게 쓰여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을까? 물론 당시 한 시간에 만원이라는 거금과 그런 돈 있으면 차라리 나한테
피란길에 오른 선조가 맛있게 자셨다는 묵(목어)이라는 물고기 맛에 반해 이 투자하라며 은근히 내미는 손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름까지 애첩이름 지어주듯 은어라 바꾸어 주었는데 궁궐에 돌아와 그 감칠 그러나 잘못된 판단은 계속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결국은 도루묵 여사라는 명
맛 나는 속내를 못 잊어 다시 불러들이고 보니 그 옛 맛이 아닌지라 발로 툭 예로운 명칭을 수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렇
차버리며 하시는 말씀이 <도루 - 묵>이라 하였다하여 그리 불리게 됐노라는 게 장담하던 ‘고급 도로연수’는 가뭄에 콩 나듯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자신만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이 명예롭지만 서글픈 명칭이 한동안 나의 이름이 되 만하던 나의 콧대도 여지없이 뭉그러져 갔다.
어 빛을 발했었다.
두 손은 핸들을 놓칠세라 꽉 틀어잡고, 엉덩이는 엉거주춤 반쯤 뜨고, 시선은
도루묵 여사. 앞차 꽁무니에 진드기 마냥 고정시킨 채 발은 3개의 정답 중, 무엇을 찍을까
기분 언짢아 할 것도 없이 운명처럼 그러련 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이름인데, 문제지를 앞에 둔 수험생 마냥 끙끙대며 허둥지둥, 기어 한 번 바꾸기는 어찌
그 이유인즉 초보운전 딱지 하나 떼지 못하던 새가슴인 까닭일 것이고, 더 나 나 힘이 들던지……. 당시엔 수동기어가 일반적이었던 것도 초보에겐 퍽이나
42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