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전시가이드 2025년 07월 -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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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정의 전시포커스
            해마의 사랑을 지켜주세요_20F_캔버스에 아크릴화_2024
         꿈꾸는 산책자                                        를 정리하는 것 등은 모두 ‘놀이’나 ‘취미’가 아니다. 이것은 감각의 언어를 구
                                                        성하고 정렬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그의 방식이다. 로봇처럼 보일
        황성제 작가                                          만큼 규칙적인 생활은 감정과 창작을 지탱하는 감각의 기반이 된다. 황성제
                                                        는 어릴 적부터 장거리 비행 중에도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조용히 그림을 그
                                                        리곤 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대신, 작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어머니 김금자는 “그림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
                                                        와 관련된 것들, 웹툰, 굿즈, 게임 같은 걸 전부 다 좋아해요. 그래서 다른 작가
        로봇처럼 걷고, 친구처럼 그린다                               들보다 완성 속도는 느리지만, 그만큼 더 많이 사유하고 집중하죠”라고 말했
                                                        다. 이 발언은 황성제의 예술이 얼마나 총체적이고 다층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황성제는 ‘로봇을 그리는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번 전시 《꿈꾸는 산책
        자》는 그 단일한 이미지를 넘어선다. 만여 개에 달하는 창작 로봇 캐릭터는 작     아카이빙, 예술과 존재를 잇는 다리
        가가 감각과 감정을 조직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황성제의 작
        업은 단순한 묘사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구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개인전이 아니라 ‘아카이빙 전시’라는 형식을 택했다. 아
        조화하며, 감정적으로 번역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언어다. 드로잉 작업에서         카이빙은 과거의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이지만, 동시대 예술에서는 단순한 보
        황성제는 매우 빠르다. 즉석에서 캐릭터를 그려내는 능력은 마치 작가의 내면       관이 아닌, 작가의 세계관을 해석하고 조망하는 하나의 큐레이션 방법론이다.
        속 캐릭터 세계가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색을 입히고 구      황성제의 아카이빙은 캔버스 회화뿐 아니라 태블릿 낙서, 복사지 드로잉, 굿
        성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는 비효율이 아니라 정교한 감각의 누       즈 사진, 웹툰, 블로그 포스팅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다층적 자료는 작가의
        적이며, 창작의 리듬이다. 황성제의 창작과정은 누군가에겐 느려 보일 수 있지      감각이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예술은
        만,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이며, 일상의 반복에서 기인한다. 황성
                                                        제는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며, 같은 방식으로 로봇
        작가의 일상은 일정한 루틴으로 이루어진다. 태블릿으로 드로잉을 하거나 복        을 구상한다. 이는 고정된 패턴이 아니라, 창작을 위한 감각적 조율의 리듬이
        사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 수집한 굿즈      다. 아카이빙은 이 리듬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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