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전시가이드 2024년 12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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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검은 낮달, 60×60cm, Mixed media on Wood Panel,  2019   섬의 탄생, 60×60cm, Mixed media on Wood Panel,,  2024




        융합서예 _ 예술을 위한 전방위적 접근

        글 : 류철하 (전시기획자)

        한천(翰泉) 양상철(梁相哲)은 60년대 중반 학생서예대회를 통해 서예계         서양 미술양식의 전반적 수용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형식의 해체와 새로
        에 입문한 이래 독립불구(獨立不懼)의 생활로 독학(獨學)의 전형을 이룬         운 미의 탄생을 뜻하게 된다.
        서예가다. 스승과 학연이 불원(不遠)한 예술계에서 남다른 재주로 다른          한천은 이러한 융합적 사고에 기반한 예술행위의 실천가란 의미에서
        길을 가기란 쉽지 않지만 그는 건축을 자신의 업(業)으로 삼았다. 일상과        자신을 ‘융합서예술가’라 칭한다. 서예의 고유한 숭고미를 넘어 ‘대중과의
        서예가 분리된, 그리하여 밤에 글씨를 쓰는 생활을 지속한 야독(夜讀)의         소통’이라는 한천의 생각은 시대성을 잃은 서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연마를 통하여 그의 예술세계는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는 현실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천은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선생의 각별한 지도와 이중섭과 청강
        김영기 등 미술계의 명성과 인연을 통해 일찍이 문화예술의 풍부한 자산          한천이 하고자 하는 형식의 해체는 서예와 미술이 만드는 공간구성, 속
        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공모전의 수상과 초대작가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          도, 리듬감, 우연성에 있다. 한천은 자신의 서예와 건축에 담긴 작품세계
        지기 전까지, 한천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임서(臨書) 및 창작(創       를 “서예는 선율적이어서 음악이며, 회화이며, 조각이며, 건축‘이라고 말
        作) 구상에 수 십 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어쩌면 그의 예술적 역량을 시험      하고 있다. 서예의 선과 절주는 리듬감 있는 음악으로 변하고, 그 시각적
        하는 난관은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겠지만, 한천은 이 문외(門外)의 삶을         형식이 회화, 조각, 건축으로 변하여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고 말하고 있
        통해 서예가 처한 뚜렷한 현실을 직관했을 것이다.                     다. 한천의 융합 작품은 ‘고문자(古文字)와 함께 이미지에 상상력을 부여
                                                        하고, 사물에 대한 직관과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 한다. 한천은
        현대문명에서 서예의 낯 설음, 즉 ‘소통불가의 텍스트’라는 서예의 위기는        ‘문자의 원류를 찾는다’는 생각에서 신석기 암각과 고대문자(갑골, 금문
        대중적 접근이 불가한 기호처럼 현실에 떠돌고 있다. 오늘날 서예는 동양         등)의 상형성을 찾아 ‘문자=그림’이 가능한 고대 상형의 세계, ‘보는 것’이
        문명의 황혼을 추수(追隨)하는 ‘시대착오’처럼 되고 있는 것이다.            가능한 이미지의 세계를 찾아 지금의 시각으로 되새김한다.

        한천은 이러한 시대착오를 넘어서, 현대의 서예가 가야 할 길을 ‘대중의         한천 양상철은 시대와 함께 하는 서예의 생명력을 위해 동서양의 재료를
        접근성’에서 찾는다. 한천은 서예를 읽기보다 ‘보는’ 쪽에서 ‘예(藝)’를 창     융합해 과감한 형식실험을 진행한 혁신가다. 한천의 실험에서 즉흥적이
        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에너지와 마찰력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고 목적 없이 표현된 것 같은 색채 요소들은 자연의 만들어 낸 수많은 연
                                                        상(聯想)과 유기적인 형태 속에 하나의 의미 세계를 이룰 것이다.
        서예의 ‘보는’ 쪽이라는 것은 서예가가 감상자의 시선으로 충분히 미와 예
        술로 느낄 수 있는 접점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예         그가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고대 동북아시아의 상징과 문자들은, 그의 건
        가의 집중된 힘(에너지)과 표현들(마찰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축학적 상상력 속에 운동성을 갖고 공간을 품고 형태를 만들어, 하나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미적 표현력을 위해서는 ‘전방위적 사고’로 접근         우주적인 건축물을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 서예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하여 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천이 말한 ‘전방위적 사고’는 동        내는 전방위적 건축물이 그의 실험과 전통 탐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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