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전시가이드 2024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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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53×41cm, Acrylic on canvas, 2008 자화상, 91×73cm, Acrylic on canvas, 2009, 2010
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노에틱 드로잉, 자화상
동시대 미술가들이 모더니즘 평론에서 부당하게 제거된 환영을 되살리는 것
수입된 서양 미술을 접하는 입장에서 서용선은 그림의 형태 너머 ‘이야기’에 은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후기 구조주의를 비롯한 포스트모
주목했다. 그러나 이 무렵 추상표현주의는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필두로 한 ‘ 더니즘 담론과 함께 이제 예술가들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정해진 상징
평면성’이라는 모더니즘 담론과 함께 수입되었다. 여기서 ‘평면성’은 그림에 이 아니라 각자의 관점에서 개별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서 환영, 즉 스토리를 제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추상은
더욱 피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안젤름 키퍼의 작업을 미국의 미학자 존 길무어는 앙토냉 아르토
의 ‘잔혹극’에 비유해 설명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상징은 시니피에
그러나 이러한 평면성은 어디까지나 평론가의 해석일 뿐, 작가적 관점에서 의 가치를 결정하는 ‘본질’이 사라지고, 실천, 담화, 텍스트 등 여러 개의 표면
추상표현주의 예술은 전혀 평면적이지 않았다. 마크 로스코와 아실 고르키 이 상호텍스트성으로 교차하는 장이 되었다. 여기서 아르토의 잔혹극은 현실
의 초기 작품을 보면 초현실주의 경향이 두드러지며, 이 형태들이 점차 단순 속 감각이 상징으로 고착화하기 전의 과정을 보여주며 ‘상징적 불편함’을 자
화하면서 추상으로 변해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는 내용을 제거한 것이 아 아냄으로써 원초적인 감각을 드러내는데, 키퍼의 역사 작업 역시 이러한 낯
니라 형상 너머에 있는 감각을 절실히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참혹한 전쟁을 설게 하기로 새로운 상징을 시도한다고 그는 봤다. 키퍼의 회화가 세상에 관
피해 고향을 떠난 이민자로서 느끼는 절망과 막막함을 표현한 결과물이다. 한 정리된 질서와 그것을 무너뜨리는 우주의 힘, 신화적 주제를 충돌시키면
서 과거와 현실의 관계, 또 과거에 관해 우리가 떠올리는 인간의 정체성을 다
그럼에도 냉전 이데올로기 전쟁의 산물로 탄생한 추상·구상 이분법은 전 세 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계로 수출됐다. 추상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선동하지 않는 자유롭고 깨끗
한 미술로. 이에 반해 구상은 형상을 담아 선동하는 프로파간다 예술로 여겨 서용선은 새로운 상징의 구심점이 되는 몸을 제대로 감각하고 단련하는 도구
졌으며, 이러한 잣대는 아직까지도 추상과 구상을 단색화와 민중미술 두 갈 로 자화상을 이용한다. 1990년대 자화상이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작가의 모
래로 구분하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예술가들이 그림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습을 배경 속 하나의 오브제처럼 그렸다면, 후기로 갈수록 이 자화상은 점점
감각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시선, 표정, 몸짓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는 필자에게 자화상은 내가
보는 것과 동시에 그곳 내부의 감각을 (나의 몸이기 때문에) 스스로 느낄 수
서용선 역시 ‘구상’을 그리거나 ‘붉은색’을 즐겨 사용한다는 이유로 이런 오해 있어서 흥미로운 주제라고 밝힌 바 있다.
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역사나 도시를 소재로 한 것은 어디 입지 않은 모습을 표현했는데 이는 살갗, 표면에 느껴지는 감각을 표현하려
까지나 인간과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는 것으로 짐작된다. 2009년 화려한 색채의 자화상 역시 세포의 동물적 감각
을 포착하려는 노력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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