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전시가이드 2024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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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 Horizon   60x60x30(cm)  Mixed Media  2023


            블랙홀과 나(我)                                       재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거대한 우주에도 ‘Black Hole Cygnus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통해 억눌린 실존의 요구와 구원(救援)의 메       X-1’이 존재한다.” (2023, 추은영 작가 노트)
            시지를 작품에 담아 온 작가 추은영이 이러한 블랙홀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작가에게 블랙홀은 여전히 우리 지성(知性)의 어두운 공        작가가 만든 블랙홀은 불가사의의 언어를 방출한다. 작품이 움직이지 않는
            백 중 하나이지만,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는 미지의 대상이다. 이번 전시에       다고 해서, 그리고 장식이 배제된 고요한 분위기라고 해서 감상이 만만한 것
            서는 실험적인 재료와 방식으로 제작된 소용돌이 모양의 설치 작품과 혼돈         만은 아니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의 정신은 블랙홀 제트의 어지
            과 질서의 성장을 동시에 보여주는 3D 영상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제목도      러운 세차운동(precession: 회전하는 천체의 회전축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
            <Black Hole Cygnus X-1>을 필두로, <Accretion Disk>(강착 원반), <Event   는 현상)에 오버랩되며,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이끌려 붕괴하지 않기 위해 긴
            Horizon>(사건의 지평선), <Relativistic Jets>(상대론적 제트) 등과 같이 예  장을 지속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비교적 작고 단순한 형태로부터 크고 복
            사롭지 않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에게는 얼핏 천체물리학에 대한 한 예술        잡한 심리적 요동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유독 더 돋보인다. 이 심리적
            가의 관심처럼 보일 수 있다.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작가에게 대상이자 주     요동엔 전시장을 압도하는 의미의 이중성과 모호성도 한몫하는데, 예를 들
            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복잡성이요, 존재의 뿌리칠 수 없는 박탈감이다,       어 무(無)로의 빨아들임과 유(有)로의 내뱉음, 매력과 혐오, 흑마술 같은 소멸
            이번에도 작가는 환상 속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그 환상을 근거로 욕망을 형       과 숭고한 발생 등의 역동적인 뒤섞임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탈-경계적인
            성하는 존재의 비애를 자연의 보편성 안에서 재구성하려 한다. 초(超)시·공간      이 거대한 무질서가 곧 우주의 질서라는 점을 환기하고, 우주의 신비를 우리
            적 블랙홀과 나의 민감한 존재론적 맞물림 속에서 자신의 소용돌이치는 내면        자신의 신비로 빠르게 인도한다. 물론, 블랙홀은 우주 전체의 미스터리로 보
            을, 그 무한의 억겁(億劫)을 들여다본 것이다.                      자면 그저 작고 미약한 요동일 뿐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그것은 가능한 모든
                                                            상상의 몰락이요, 존재하는 모든 게슈탈트(gestalt)의 죽음이다. 짐작건대, 블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욕망을 품고 있으나, 영원한 결핍을 안고 살아가야 하      랙홀의 막강한 욕망 앞에서 작가는 작품 제작 내내 초월과 숭고를 요청할 수
            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대한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가장 빠르게 빨       밖에 없었을 것이다.
            려 들어가고 싶지만, 애써 등을 돌리고야 마는 우주 속의 작은 먼지 같은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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