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전시가이드 2024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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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30×30cm, Mixed media, 2023                        치유의 큐브, mixed media, 2024


            자연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 꽃이 만개한 뒤엔 떨어지는 순간이 오는 것처      미나 비례미를 크게 의식하지 않은 분할을 선택했다. 습관적 패턴처럼 느껴
            럼, ‘낙화’라는 단어는 인생의 찬란함도 일시적이며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음      지는 좌우 끝이 없는 배경은 화면의 확장성과 자연의 연속성을 의미한 듯 보
            을 상기시킨다. 낙화가 시간의 흐름과 변화, 존재의 무상함과 허무함, 그리고      인다. 여기에 화면마다 빠지지 않고 무지갯빛 색 띠가 등장한다. 이는 작품에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적 의미로 비유되는 이유이다.               표현하고, 담고자 한 작가의 감정선 같다.
            그렇다면, 임현주에게 ‘낙화’는 어떤 의미일까?
                                                            결국, 임현주에게 낙화는 꽃의 떨어짐을 본 우연이 필연이라는 것을 느끼는
            임현주의 낙화 시리즈는 소소한 일상에서 겪은 자신만의 내적 감정과 현실         찰나의 순간에 충돌하는 감정들을 상징한다. 그녀에게 낙화는 슬픔과 기쁨,
            사이에서 느끼는 이성과 감정의 대립적 상황을 여러 조형언어(무지개색, 꽃        절망과 희망의 감정을 동시에 일으키는 대상이지만, 이러한 감정 충돌은 절
            잎, 엘레강스잎, 음표, 낙서 등)로 표현한 세계이다. 신작의 특징은 구상과 추    망적이거나 부정적이기보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
            상을 한 화면에 표현한 점이다. 사실적으로 그린 꽃잎 부분과 즉흥적 붓놀림       다. “꽃잎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이 꽃이 피어있을 때 못지않은 극적인 감정
            으로 표현한 추상 부분으로 구분된다. 화면상 꽃잎이나 이파리의 낙화 장면        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낙화를 보면서 사랑하던 존재의 부재가 떠오르며 슬
            보다 화면 중앙의 많은 화면을 차지하는 강렬한 색채의 추상적 표현이 시선        픔과 아픔이 밀려오지만, 이내 살아있는 존재에 감사하며 안녕을 기원한다.”
            을 끈다. 사실, 낙화라는 주제에 비춰보면 정작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미약      라는 고백처럼 임현주는 낙화를 생의 소멸이 아닌 생의 생성으로 인식한다.
            하다. 화면의 한 부분에 살며시 등장하는 것에 그친다. 마치 보는 이의 감정      화면에 그려 넣은 음표와 악보, 그리고 무지갯빛 화려한 색채의 이중주로 그
            을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랄까. 반면, 화면 중앙의 추상적 표현은 일상에서 마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주한 어떤 현상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분출시킨 듯하다. 관점에 따라 어린아
            이가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마음껏 표현한 그림처럼 자유분방하다. 들풀들이        결론적으로 임현주의 낙화 시리즈는 꽃이 떨어지는 찰나의 아름다움, 그리고
            음악적 선율에 맞춰 춤추듯 보이기도 하고, 배경색에 따라 마치 어항 속 열대      그것에 의해 발현된 이중적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한 자기 내면의 세계이다.
            어가 노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삶의 여유와 자유
                                                            를 한층 넓게 펼치고 싶은 유희충동의 분출이다.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 준 자
            화면상 과감한 일필의 붓 터치마다 방향감과 속도감이 더해져 활력이 넘친         연 이치가 타인에게도 치유의 희망으로 전달되기를 꿈꾸는 무지갯빛 색채로
            다. 거칠게 다룬 터치로 촉각성과 역동성을 강조했다. 역동적인 추상 화면과       그린 마음 일기이다.  <중략>
            달리 꽃잎이나 엘레강스 잎들이 그려진 상단이나 하단은 상대적으로 차분하
            다. 사실적 표현의 낙화가 경험에 근거한 재현이라면, 추상적 화면은 작가의       색채와 형태에 대한 독창적 이론을 펼쳤던 현대 순수추상 미술의 선구자 바
            심상이 직관적으로 표현된 부분이다. 이러한 대조적 표현은 “우연과 필연. 이      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감정과 정신적인 경험을
            성과 감성의 충돌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을 작품세계로 표현하고자 한다”라        표출하는 예술적 수단으로 일찍부터 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색을 피아노의
            는 작가의 제작 의도와 맞아 떨어진다. 실제 추상과 구상, 색과 형, 이성과 감    건반으로 표현하며, 색의 조화는 인간의 영혼을 합목적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성 등 대립적 충돌은 ‘시시포스(Sisyphus) 삶’-‘치유된 흔적’-‘낙화’ 시리즈로   법칙에 근거한다’라는 지론을 통해 특정한 대상의 재현 없이 형과 색만으로 ‘
            이어진 창작과정에서 지속해서 부딪혀온 갈등이기도 하다.                  예술적 영혼’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색의 조합이 조화로울 때 인간
            화면분할과 화면처리 방식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일단, 긁어내고, 번지고, 스      의 감정과 정신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색의 예술적 원리를 강조한 말이다.
            며드는 기법이나 유화, 아크릴, 먹, 수채화 등 혼합 재료의 사용, 암호처럼 쓴    임현주의 작가노트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나의 영혼, 나아가서는 다른 이의
            비문(非文) 등 자유로운 기법과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크게 변함이 없다. 다      마음과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살찌울 수 있게 하는 좋은 음식 같은 그림이 되
            만, 전작이 밑바탕 색채 면을 유화로 도포하며 바탕 색채를 은은하게 드러낸       었으면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큰 희망이다. 이 희망대로 특정
            방식이었다면, 신작에서는 반대로 색채의 화려함을 한층 직접적으로 드러냈         한 자연현상을 집약시킨 상징적 색채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임현
            다. 감정의 표현에 솔직하고, 즉흥적이다. 화면구성 또한 황금비례 같은 균형      주만의 무지갯빛 색채원리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새롭게 구축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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