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전시가이드 2020년 9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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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979, 대리석, 석조를 전공하기까지 계기를 이뤄낸 작품
하게 되었다.
무슨일이 부딪히면 망설임이 없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전남대 강관욱 교수의 지도를 받았고 정과 망치로 돌을 쪼
아내는 모습과 돌에서 작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빠져들면서 덕수궁 석조전
에서 관람했던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의 작품이 다시 회상되었다. 밤
이 새는 줄 모르고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팔이 퉁퉁부어올라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강교수는 이진자 작가의 등을 치며 “모세혈관이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몸 생각도 안하고 작업했느냐며” 걱정과 사랑의 매가 오늘의 조각가 이진자로
이름을 알리며 꿈을 키우게 된 에피소드도 있었다.
작가는 여자라는 이름 때문에 연약하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조각 작
업을 하는 데에서도 결코 여자라 힘에 부친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겉돌깨
기 작업을 거쳐 스케치를 하고 작업을 진행한다. 쪼아내기도 하고 깍아내면서
작업을 완성해 간다.(카빙(carving), 덩어리를 쪼아내어 깍아내서 표현하는 걸
조각이라고 하고 붙여서 만드는 것을 모델링이라 한다.) 전국대학미전에 수
그날 오전에, 243×155×685mm, 대리석, 2004
상한 작품을 보며 심사위원에게 “한국의 미켈란젤”로 라는 칭송을 받기도 하
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구상조각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수상경력
으로 2000년 충남미술대전에서 상생(相生)작품이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계룡시청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티 공간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의 결실로 더뮤지엄
이진자 작가의 이력도 화려하다. 미술교사를 거쳐 미술학원장, 충남예산문화 아트진이 개관하게 되었다. 전시장의 설계와 기획, 인테리어 등 개관식을 준비
원장, 전국문화원 연합회 이사를 역임하고 여성비례대표 예산군 군의원을 지 하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많은 애로가 있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사회적
냈다. 아트진미술학원장 시절 예산이라는 곳에서 학생수가 300명이 넘었고 거리두기를 시행하며 지난 5월 개관식을 하게 되었고 개관특별전으로 이진자
학원생들의 미술대학진학률도 높은 편으로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홍대앞 작가의 소장품전을 시작으로 노재준 작가의 달항아리 닮고 담다전, 이동규의
에서 미술학원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것도 만류하고 과거 현재의 사진전, 임혜숙의 여름을 말해줘, 김세미 민화전, 유회선 온정 여
예산을 떠나지 않았다. 우전 등 지역작가 초대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갤러리활성화 차원해서 지역
문화원장시절 여성비례대표 예산군 군의원 당선하고 지역을 살펴보고 대안 향토작가들을 초대해 전시하는데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기획하고 관리
마련 등 주민의 윤택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일하다보니 예산지역 주민과 함 하므로 모든 일정을 총괄하며 진정한 지역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께 공유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없음을 안타까워했고, 지역발전을 위해 지역
축제 등을 기획 하였다. 충남 예산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탄생지로 그분이 가 더뮤지엄 아트진은 교통의 편리함 등 접근성이 좋다. 문화적으로 활동했던 부
지고 있는 학예 정신이 깃든 추사체를 예산읍에 도시 창출의 매개체 역할을 분들이 도움이 되었으며 지역활성화의 일부분에 일조하며, 지역 작가들 역시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문화원장시절 충남 예산에서 추사 김정희 더뮤지엄아트진에서의 전시에 대한 기대가 높은 편으로 작가와의 교류와 가
추모 전국휘호대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작품의 아트상품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예술인경제활동에 촉진제 역할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공동체로 예술인이 뭉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이진자 작가는 작품관람을 하면서 맘에드는 작품을 사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는 생각에 수익성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지역의 작가들을 위해 전시장을 제공
모은 작품이 150여 점이 되었다.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문화와 예술의 커뮤니 하고 있으며 대관을 원하는 타지역 작가들에게는 최소한의 실비로 전시장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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