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문득(聞得)_마음을 그릴 때 꼭 들어야 할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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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건 우






           느슨한 강박


           참 오래전 기억인데 아마 1975년 여름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학하는 날, 어렸지만 당황스런 상황에 얼마나 몸 둘 바를
           모르고 쫄았는지 지금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생각이 납니다. 여름 내내 지금의 관악산 계곡에서 동무들과 물장구치고 뛰어다니느라 일기는 물론
           이고 방학과제물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신나게 놀다 보니 개학은 다가오고 밀린 숙제들은 부담으로 머릿속을 빙빙 도는데 개학 날은 무
           섭게 다가왔고 정말 가기 싫은 학교를 에라 모르겠다 담임 선생님께 몇 대 맞고 말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등교를 했는데 이 눈치 없는 우리 반 녀석
           들은 다들 숙제며 과제물을 왜 이렇게 성실하게 잘해서 왔는지 혼나는 것은 둘째고 은근 나 자신 어찌나 자존심이 상하던지(열심히 과제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눈치만 살피고 담임 선생님 눈을 피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드디어 과제며 숙제 검사를 시작했는데 어찌나 내 순서가 빨리 다가오는지(키가 작으니) 책상 위에 꺼내 놓을 게 없는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쫄아
           들어 있었고 담임 선생님은 너는 왜 아무것도 없는 게냐!, 하는 불호령에 답도 못하고 있으니, 이놈 방학 동안 탱탱 놀았구만 앞에 나가 손들고 서
           있어! 그리고는 각오한 대로 손바닥 몇 대 맞고 넘어가는 듯 했는데, 한바탕 검사가 끝나고 갑자기 4학년 전체가 복도에 책상을 나열하고는 과제물
           전시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기껏해야 문방구 수수깡으로 표현하고 싶은 조형물들을 긴 복도에 늘어 놓으니 그때 어린 생각에 과제물 숙제를 안 한 것도 괴로운데 전시까지 한
           다니 갑자기 내 스스로 나 란 녀석은 정신머리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심한 자책감에 그 당황스러움은 창피한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지금까지 기억이 나고 있는 것을 보니) 확실한 것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런 수모를 당하기 싫었던 것인지 나름 책임이란 것에 무게가 실
           렸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기며 과제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를 지배하게 된듯하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흘러 60을 바라보는 장년이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재조명해보는 과정에서 과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 인생 전반의 나를 붙들고 적당히 즐
           겁거나 느슨한 강박으로 나를 이끌었던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해 여름방학 세상 걱정 없는 해맑은 얼굴로 개울에서 자맥질하며 좋아 죽
           겠다고 뛰놀며 햇살에 부서지는 물장구들이 상상되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일기 써야 되는데 하는 강박을 머리 구석에 쬐끔 남겨둔 채로)


           조금 더 기억을 되살려 보면 그날 이후 5, 6학년, 졸업,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미술시간은 거의 나의 독무대였던 것 같다. 원래 재주는 있었지만 노
           는 게 더 좋았을 뿐이고 그날의 가벼운 상채기는 나를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게 했고 결국 미술을 전공으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된듯하다. 왜냐 너 정
           말 잘 그린다는 그 칭찬에 몸이 녹을 거 같을 정도로 좋았거든...

           인생을 한번 사는 아쉬움은 누구나 같은 심정이겠지만, 나를 유리해서 들여다보고 되짚어 보면 예술을 하지 말고 건축이나 기계공학을 했더라면
           더 잘 맞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좀 더 물리적이고 공학적인 것으로 나의 강박을 잘 유도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느슨한 강박이란 단어로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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