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문득(聞得)_마음을 그릴 때 꼭 들어야 할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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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지 상
















           억울하거나 두렵거나 슬프고 외롭거나 아프다고 해도, 우리가 느끼는 각각의 감정 빛깔은 아름답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 덩어리들이 뭉쳐
           지면 마치 여러 물감이 의도 없이 섞인 것처럼 색이 점점 탁해지고 흐려지며 어두워진다.

           나는 이 그림을 40대 부부를 상담하는 동안에 그렸다. 그들은 분명 아직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순간에는
           분노를 느꼈고, 분노는 다시 억울함으로, 서글픔, 상실감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상대방을 증오하는 데에까지 이어졌다. 이혼 도장을 찍고서
           야 그들은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생선 살에서 가시를 발라내듯이 각자의 욕구와 생각과 감정을 차분하게 분리하며 상대방에
           대한 감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닿지 않은 편지’처럼 정말로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말들이 눈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나는 당신한테서 사
           랑받고 싶었을 뿐이야.”

           감정은 그저 눌러두거나 피하지 않고 알아차려 주고 느껴주면 다시 고운 빛깔을 되찾으며 떠나간다. 마치 전설의 고향에서 원님을 만나 한
           을 풀면 옷을 갈아입고 승천하는 귀신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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