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샘가 2024.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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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아스는 재산상의 손해가 있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친척을 위해 책임을
            다합니다. 모든 일을 합법적이고 공적으로 처리하려 합니다. 그래서 관례대로 장로
            들을 불러 모든 절차를 이행합니다.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1-5) 보아스는 살아계신 주를 두고 맹
            세한 룻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합니다. 먼저 보아스는 자신보다도 더
            가까운 친척을 찾아갑니다.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판 것을 물리기 위해 성
            문으로 갑니다. 공식적인 의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문은 성문 입구의 넓은 장
            소를 가리키는데 백성들의 집회의 장소로서 소송문제나 일상생활의 난제를 처리하
            는 재판의 장소였고, 종교적으로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백성을 가르치고 예언을 행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소유지에 대한 기업 무를 자를 정하는
            문제를 놓고 최소한의 법적 증인 전원 수인 장로 열 명을 세워놓고 논의를 시작합니
            다. 그리고 보아스는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친족의 땅만을 무르는 것이 아니고 친족
            인 엘리멜렉의 가문의 이름을 세워주는 책임까지 무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
            다. 즉 과부가 된 룻을 취하여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고 그 아들에게 땅도 상속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결국 자기 가문이 아닌 엘리멜렉의 가문을 계승하게 하
            는 책임까지 무르는 것입니다.

              그의 신을 벗는지라(6-8) 기업 무를 자의 책임과 의무를 들은 친척들이 자신의 권한
            을 포기합니다. 이들은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으로 우선권이 있었습니다. 그러
            나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권한을 공적으로 포기합니
            다. 이를 선포하는 행위로 자신의 신을 벗어 놓습니다. 그에 증인으로 있던 열 명의
            장로들이 보증하였습니다. 따라서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가문에 대한 기업 무를 자
            의 권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한 룻과의 약속을 지킨 것입
            니다. 기업 무를 자는 자신의 기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이웃을 세우고 살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참된 고엘, 즉 모든 환난(창
            48:16), 대적의 손(사 41:14)에서 건져 주시는 기업 무를 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생명을 속량 제물로 주어 우리의 영원한 죄 값을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셔서(딛
            2:14) 모든 믿는 자의 기업 무를 자가 되셨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고엘 제도는 사회
            안전장치로서 복음을 예표하는 일입니다.


              적용: 당신의 참 기업 무를 자이신 하나님의 세워주시고 살려주시는 은혜를 입었음
            에도 당신은 이웃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업을 확장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
            습니까?

             미국 대통령과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 은퇴한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환호하는 환
             영 인파들, 군악대, 빨간 양탄자 그리고 언론이 대통령을 뜨겁게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교사가 배
             에서 내릴 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나
             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지 않니?”
             삶이 힘들어지고, 의심의 구름이 몰려오며,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게 될
             때 우리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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