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강신영 개인전 2024.10.16~11.3 여주시미술관 아트뮤지엄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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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이야기를 되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원형(존재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어떤 뿌리의식)을 그리워한
다. 작가의 조각은 어쩌면 잊혀졌을 지도 모를, 이 큰 그리움에
유년의 이야기는 어른의 이야기와 다르다. 유년의 이야기가 물 대면하게 한다.
흐르듯 거침이 없다면, 어른의 이야기는 한정적이고 닫혀있다.
어른의 이야기가 논리적이어서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작가는 이런 스펙터클한 서사며, 존재론적 이야기를 스테인리스
뿐이라면, 유년의 이야기는 그 논리의 한계를 넘어서 큰 이야기 스틸을 소재로 한 일련의 조각
를 꾸며낸다. 신화, 설화, 우화, 동화, 전설, 민담이 모두 이 큰 이 으로 풀어낸다. 그 의식이 자연의 본성을 향하는 것인 만큼 가급
야기에 속하고, 유년의 이야기는 이런 큰 이야기에 연이어져 있 적 자연을 닮게 만든다. 이를테면 나뭇잎의 경우, 소재를 나뭇잎
다. 그 이야기가 논리를 뛰어넘는 것인 만큼, 논리로 싸안을 수 형태로 자른 연후에, 이를 높은 온도의 불에 달궈 해머로 두드리
없는 비전을 열어놓는다. 초현실주의와 비엔나환상파, 그리고 는 방법으로 자연스런 흔적과 형태를 얻는, 단조기법(일명 방짜
남미의 매직리얼리즘이 이 이야기의 계보에 속한다. 마술로 읽 기법)을 취한다. 가녀린 선조의 경우, 그 유기적인 형태가 마음
어낸 리얼리즘이며, 현실 속에 깃들여 있는 마술 같은 순간들을 에 드는 실제의 나뭇가지를 골라서, 보고, 본 그대로를 만든다.
발견하고 캐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면이 잘려져 나간 나무둥치 형태의 경우, 실제의 나
무둥치를 속(틀) 삼아 그 위에 소재를 덧대어 나가는 방식으로
이런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작가는 문명(혹은 문명화된 의식) 형태를 만든 연후에, 그 속의 나무를 태워 없애는 방식을 취한다.
에 가려지고, 왜곡되고, 축소된 자연의 본성을 드러내고, 그 본성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연에 흡사한 형태를 얻는 것이다. 그
이 품고 있는 위대한 모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모성에의 지향 러나 따지고 보면, 이처럼 실제를 모방한다고 해서 형태 역시 실
성은 각각 순환사상(시작도 끝도 없이 연이어진 뫼비우스의 띠 제 그대로 나와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소재가 작가의 조각
처럼 생가 사가 순환하고, 물과 땅이 순환하고, 물과 하늘이 순 에서처럼 스테인리스스틸이라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감각의
환하고, 나무와 물고기가 순환하는)과 생명사상(자연에 영이 깃 문제며, 기술적인 난이도와 이를 실현하는 능력의 문제다.
들여 있다는 믿음과 신념으로부터 유래한 물활론, 범신론, 샤머
니즘, 토템으로 나타난),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재론적 원형에 대 스테인리스스틸을 소재로 한 작가의 조각은 지금까지의 스테인
한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으로 나타난다.여기서 그리움은 순환 리스스틸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하게끔 한다. 이를테면 대
사상과 생명사상을 싸안 개는 심플하고 추상적인 구조의 표면에 번쩍거리는 광택과, 그
는, 이보다는 더 큰 개념 표면에 비친 반영상으로 특징되는 표현의 한계를 재고하게 하
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부 고, 유별난 강도로 인해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단조기법을 적용
재하는 것을 그리워한다. 하고 실현해 보임으로써, 특히 구상적, 형상적, 서사적 표현 가능
현대인이 상실한 것들, 억 성을 확장시켜
압한 것들, 돌이킬 수 없 놓고 있는 것이
는 것들, 그래서 불가능한 다.
것들, 자연(동물성과 식
물성, 야성과 야생을 싸안
는), 고향(지정학적 개념
과는 상관없는, 의식적 층
위에서의 문제와 관련된),
나무연못 2008 연못사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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