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양상철 개인전 2024. 11. 12 – 25. 2. 23 제주돌문화공원내 오백장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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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론        Critique







           융합서예 _ 예술을 위한 전방위적 접근



                                              류철하 (전시기획자)



           한천(寒泉) 양상철(梁相哲)은 60년대 중반 학생서예대회를 통해                    한천은 이러한 융합적 사고에 기반한 예술행위의 실천가란 의미에서
           서예계에 입문한 이래 독립불구(獨立不懼)의 생활로 독학(獨學)의                    자신을 ‘융합서예술가’라 칭한다. 서예의 고유한 숭고미를 넘어
           전형을 이룬 서예가다.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한천의 생각은 시대성을 잃은 서예에 생명력을
           스승과 학연이 불원(不遠)한 예술계에서 남다른 재주로 다른 길을                    불어넣고자 하는 현실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기란 쉽지 않지만 그는 건축을 자신의 업(業)으로 삼았다. 일상과
           서예가 분리된, 그리하여 밤에 글씨를 쓰는 생활을 지속한 야독(夜                   <3일간의 프로젝트>로 만든 <노자와 산방굴사(山房窟寺)>라는
           讀)의 연마를 통하여 그의 예술세계는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이 있다. 가로 5M크기의 천 위에 먹과 아크릴로 제작한 야외 현
           한천은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선생의 각별한 지도와 이중섭과                   장 서예작품이다. 서주(西周)시대 청동기 문자로 쓴 노자의 경구는 강
           청강 김영기 등 미술계의 명성과 인연을 통해 일찍이 문화예술의                     자의 힘에 생존하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내용인데, 대필(大筆)
           풍부한 자산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공모전의 수상과 초대작가로서                     로 비바람을 피해 굴(窟)에서 수도하는 인간을 형상화한 그림이 강
           확실한 입지를 다지기 전까지, 한천은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기                      렬하다. 붉은 먹으로 쓴 공(空)과 허(虛), 무(無) 등의 글자가 텍스트로
           위해  임서(臨書) 및 창작(創作) 구상에 수 십 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부터 부유하듯 공간이미지를 장악하고 있다. 인간의 생존과 이념의 취
           어쩌면 그의 예술적 역량을 시험하는 난관은 주변에서 끊이지 않았                    약성이 여실히 나타난 행위성 작품으로 흐리고 바람 부는 제주의
           겠지만, 한천은 이 문외(門外)의 삶을 통해 서예가 처한 뚜렷한 현실을                날씨가 작품에 한몫 했으리라 본다.
           직관했을 것이다.


           현대문명에서 서예의 낯 설음, 즉 ‘소통불가의 텍스트’라는 서예의
           위기는 대중적 접근이 불가한 기호처럼 현실에 떠돌고 있다. 오늘날
           서예는 동양문명의 황혼을 추수(追隨)하는 ‘시대착오’처럼 되고 있는
           것이다.
           한천은 이러한 시대착오를 넘어서, 현대의 서예가 가야 할 길을                     노자와 산방굴사  2021  천에 먹, 염료, 아크릴릭 물감  180x500cm
           ‘대중의 접근성’에서 찾는다. 한천은 서예를 읽기보다 ‘보는’ 쪽에서
           ‘예(藝)’를 창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에너지와 마찰력을 키워야 한다                 한천이 하고자 하는 형식의 해체는 서예와 미술이 만드는 공간구성,
           고 한다.                                                  속도, 리듬감, 우연성에 있다. 한천은 자신의 서예와 건축에 담긴
           서예의 ‘보는’ 쪽이라는 것은 서예가가 감상자의 시선으로 충분히                    작품세계를 “서예는 선율적이어서 음악이며, 회화이며, 조각이며,
           미와 예술로 느낄 수 있는 접점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을 이루기                    건축‘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예의 선과 절주는 리듬감 있는 음악으로
           위해서는 서예가의 집중된 힘(에너지)과 표현들(마찰력)이 동반되                    변하고, 그 시각적 형식이 회화, 조각, 건축으로 변하여 거대한 우주를
           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룬다고 말하고 있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미적 표현력을 위해서는 ‘전방위적 사고’로
           접근하여 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천이 말한 ‘전방위적                    캔버스에 혼합재료로 만든 문자구성 <여름날의 정방폭포>는 폭포
           사고’는 동서양 미술양식의 전반적 수용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의 시각적 요소에 대한 형식화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정방폭포와
           형식의 해체와 새로운 미의 탄생을 뜻하게 된다.                             내리쏟는 물방울이 만든 다양한 현상, 비와 안개, 연기, 무지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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