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양상철 개인전 2024. 11. 12 – 25. 2. 23 제주돌문화공원내 오백장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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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갠 하늘, 옆으로 흘러 지면으로 흐른 물줄기 등을 표현하기                    이러한 상형성에 대한 시도는  갑골문자나 은주시대 도상문자에서
              위해 한 글자씩 강조된 묘사를 가미한다. 색상의 차이와 글자의 변형                  영감을 받아 현대미감과 접목 하려는, 서예 문자의 형태에 대한
              등을 통해 폭포의 물방울과 떨어지다(落), 희끗 희끗 비치는 흰 빛의                 본질적 도전의 의미가 있다. 사물의 생생한 음과 뜻, 형태에 근접하기
              공백(空白) 등 폭포의 현장감과 사실성, 회화적 조형을 실험적으로                   위해 형태를 해체하는 작업(도상과 단순화, 기호)과 그것의 완성된
              전개하고 있다. 서예의 점과 필획이 공간을 구성하여 형태를 만든                    상징으로서 하나의 온전한 형태 즉, 형태화 사이의 이중적 가치가
              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例示) 같은 작품이다.                           그것이다.
                                                                     사물의 풍부한 질감과 요소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식 없는 행위와
                                                                     받아들임, 곧 무형식(無形式)의 요소로 만든 오직 행위의 본질만
                                                                     남은 형식이 필요하지만, 그것의 순수한 힘은 추상의 형태로 나타난
                                                                     다는 데 있다.


                                                                     <바람의 섬> 시리즈에 나타난 제주의 바람, 흙과 바다, 사람들의
                                                                     행렬과 신석기 시대의 흔적, 물고기 등 제주를 만든 온갖 자연 형상
                                                                     들은 결국 바람과 함께 지워지며 사라지지만, 오직 강렬한 생명의
                                       여름날의 정방폭포
                                       2024                          의지만이 추상의 선으로 살아남는다.
                                       캔버스에 혼합재료
                                       162.2x130.3cm

              한천은 자신의 융합서예를 위해 보다 과격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데,
              현대미술을 접목한 ‘촉각적인 시각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의
              제작이다. 한천은 바람 많은 제주의 풍토와 거친 토양과 같은 질감을
              주기 위해 제주석 돌가루에 석고를 섞어 회화재료로 사용한다.
              석고분이 마르기 전에 빠른 속도로 칼이나 송곳으로 그은 획은
              굵기와 묘미를 살리기도 하고, 그 속도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색의
              혼합과 효과를 나타낸다.
              이러한 회화성은 색채와 재료의 통합이 만드는 물질적 층과 균열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현대재료의 물질적 융합, 곧 ‘촉각적인 가시성’
              위에 고대 추상과 문자조형의 직설적 충돌이 빚는 미적 의미를
              실험하고 있다.


                                                                     바람의 섬 - 1,2,3,4  2024  목판에 혼합재료  60x60cm
              목판 위에 혼합재료로 만든 <제주 이야기-1>은 두껍게 바른 석고
              반죽 위에 무작위하게 휘두른 붓 자국, 석고 면을 긁어 표현한 태양,                 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이 서예의 추상과 연결된 것은
              산, 바다, 노루, 제주해녀 등이 새겨져 있다. 생생한 삶이 출렁이는                 1950년대 프랑스의 앵포르멜(Informel) 작가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컬러풀한 세계와 청색 염료로 거칠고 드세게 표현된 산과 물길의                     즉흥성, 추상성, 퍼포먼스에 기반은 동양 서예의 영향을 받았다.
              조형(구상이기도 추상이기도 한)이 극면하게 대비되고 있다. 순환                    1957년 조르주 마티외는 일본 관객들 앞에서 스케치도 없이 몇 초
              하는 시간의 영속과 자연, 인간의 삶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만에 걸작을 완성시키고는 서예의 달인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행위적, 서체적 붓터치를 강조하는 이브 미쇼, 물감의 질감, 촉각적
              한천의 융합 작품은 ‘고문자(古文字)와 함께 이미지에 상상력을                     성질을 강조하는 타피에스, 포트리에, 볼스의 뿌리고 긁는 기법 등은
              부여하고, 사물에 대한 직관과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 한다.                모두 미술의 기원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앵포르멜은
              한천은 ‘문자의 원류를 찾는다’는 생각에서 신석기 암각과 고대문자                   전통과 결별하고 전쟁을 유발한 정치적 권위주의의 분위기와 단절
              (갑골, 금문 등)의 상형성을 찾아 ‘문자=그림’이 가능한 고대 상형의                하려는 시도 속에서 나왔다.
              세계, ‘보는 것’이 가능한 이미지의 세계를 찾아 지금의 시각으로                   전통과 결별하는 측면에서 한천의 작업은 앵포르멜과 다르지만,
              되새김한다.                                                 앵포르멜이 언급한 모든 기법을 실험하고 있다. 매체로서의 재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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