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전시가이드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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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혁 컬럼

















































                          샤를 루이 바장 Charles-Louis Bazin(1802~1859), <에스퀴롤 초상화>, 석판화, 1838년, 웰컴 컬렉션(런던)



         인상학과 골상학의 영향                                   마의 길이에 비해 뒤로 긴 짱구 형태의 두상이 명석한 두뇌를 보여 주는 것
                                                        같지 않나요?
        힐링의 힘                                           이런 학문 연구경향은 ‘파리인류학회Societe d’Anthropologie de Paris’를 만

                                                        들게 했고, 여기서 발간하는 학회지 ‘인류학 리뷰Revue d’Anthropoloige’는
        박광혁 (내과 전문의)                                    이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학회지가 되어 광범위한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그
                                                        리고 그것이 나중에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을 탄압하는 데 기초적인 학문적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이론에 기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프랑스 학계였다는 것       논거를 제공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입니다. 프랑스 학계는 이미 13세기경부터 사람의 두개골이 지능 발달이나 인      이런 배경을 토대로 서구 유럽에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골상학, 우생학, 인
        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근대에       상학 등을 통해 인간의 유형을 분류하고자 하였지요. 물론 이런 인간 유형 분
        이르기까지 계속되었고, 지식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요. 정신을 지배하        류의 학문적 결과는 당시 지배계층에게 지배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
        는 영역은 두개골 속의 뇌에 있으며, 해골의 형태를 숫자로 측정하면 그 위치      니라,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히틀러의 아리안족의 우월 성과 유태인에 대한 홀
        를 알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로코스트의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하였지요. 이에 따라 에스퀴롤은 자신의 정
                                                        신질환자를 대상으로 200점 이상의 그 림을 직접 그리기도 하였고, 실제로 이
        수학적 난제로 이름나 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의   그림들은 1814년에 한 살롱에서 전시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당시 이 전시회
        제약 조건 등에 관해 연구했던 여류 수학자 마리 소피 제르망Marie Sophie   에 에스퀴롤의 제자 조르주도 참여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Germain(1776~1831)은 자신의 두개골을 기증해서 골상학 연구에 사용하라  당시 제리코가 이 전시회 에 참여하여 그림을 보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고 할 정도였습니다. 제르망의 두개골은 지금도 파리 자연사박물 관에 소장        에스퀴롤의 여러 그림 이 제리코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마리 소피 제르망의 두개골을 복제한 것입니다. 앞 이      유럽에서 골상학은 20세기 초까지도 계속 신봉되면서 조르주의 연구 는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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