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쌍교동 우아한 작당전21. 11. 11 - 11. 19 갤러리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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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단이



          김  경  자




          어느 봄날. 나는 지금의 남편을 목포에서 만났다. 나는 왜 목                  눈에 반해 그 집을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것도, 그리고 지금
          포에 왔을까? 왜 지금 목포에 있을까? 남편이 나를 부른 것도                  의 남편과 함께 목포의 원도심(쌍교동)에 있는 것도, 쌍교동
          아닌데. 나는 몰랐다. 꿈에도 몰랐었다. 지금 내가 목포에 있                  에서 새롭게 만난 우리 쌍교 가족들도, 이미 몇 겁의 인연으
          을 줄은… 나의 인생 그림에는 목포는 먼 항구도시 <목포의                    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라 믿어본다. 서로에게 기가 막힌 타
          눈물>이라는 노래 가사에나 있는 그런 곳이라 생각했었다.                     이밍에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등장해주는 것, 그래서 서
          지금쯤 아마도 독일이나 유럽에서 멋진 예술가로 활발하게                      로의 누군가가 되어버리는 것, 그게 운명이고 인연이 아닐까
          활동하는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야만 했는데…                            생각해본다.


          나의 여고시절에는 순수와 진실을 추구하고 정신적 자유를                      고택 구입 후, 이 동네 산책을 할 때, 남편은 유년시절의 추억
          갈구하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앞의 생>                  이 가득한 이 골목길의 추억에 대하여 흥분되고 상기된 목소
          의 저자 전혜린 작가의 독일 유학 일기를 읽으면서 독일로의                    리로 설명해줬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다녔던 북교초는 자신
          탈출을 꿈꾸며, 제2외국어도 독일어로 선택, 예비고사도 독                    의 모교이며 전남 최초의 초등학교이고 백 년이 넘은 역사 깊
          일어 영역으로 시험을 보며 꿈을 키웠었다. 이문세의 <알 수                   은 학교라고 자랑했다. 목포의 예술인 이난영, 이매방, 김씨스
          없는 인생> 노랫말처럼 "언제쯤 세상을 알까요? 얼마나 살아                   터즈, 남진, 법정 스님, 박화성, 최초의 근대 극작가 김우진과
          봐야 알까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나요? 조금만 늦춰줄 순 없                  <사의 찬미>를 부른 성악가 윤심덕의 비극적인 사랑, 스토
          나요? 눈부신 그 시절 지난날이 그리워요. 하지만 이대로 괜                   리 많은 문인들, 극작가 차범석 선생님의 생가(남편은 20여
          찮아요."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년 전 차범석 선생님께서 써주신 전시서문 12장의 원고를 아
                                                              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까지. 그리고 북교동 성당(김우진의
          김환기 작가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는 화                   생가터)과 몇 발자국 옆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북교동 269번
          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하나를 여러 차례 둘러쌓아                    지 골목집을 보여주며 그 시절 그때의 이야기를 슬라이드 화
          가는 동안에 색이 중첩되고 번져 나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                    면처럼 느리게 회상하며 유년시절의 추억담을 맛깔나게 얘기
          체 화면을 이끌어간다. 무심코 찍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                   해줬다.
          과 번짐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란 시                   유달산 아랫마을 옥단이는 물을 길어주고 허드렛일을 하며
          에선 외국 유학시절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감정, 그리                   살았던 실존인물이며, 천대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텨가며 남
          고 인연이라는 소중한 감정을 표현하였다.                              을 위해 봉사하며 길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간 가여운 여인이었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 이렇                단다. 그 당시 목원동은 유달산 아래 자리 잡은 동네로 물이
          게 많은 사람 중에 /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귀해 많은 옥단이들이 있었다 한다.


          불교에서 보는 세상의 관점으로 인드라망이 있는데, 인드라                     그런데 나의 남편은,
          는 인간 세상은 넓고 큰 이음새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된                   "내가 옥단이었어" "왜?" "옥단이가 나야. 내가 개명하기 전,
          이음새마다 구슬이 달려있어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이름이 순옥이었잖아. 내가 북교동 옥
          는 관계이며, 그 구슬은 서로 비출 뿐만 아니라 큰 그물로서                   단이었어. 중3학년 때까지 '순옥아! 옥단아!' 그러니 내가 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것이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 한다. 부부                   마나 챙피했겠어?"
          의 연을 맺기 위해선 8000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우리
          의 만남도 이미 우주의 그물에 묶여 이어져서일까…                         중3 때까지 견디다 못해 이름을 바꿔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했다. 어릴 적 이름은 순옥이. 친구들이 '순옥이, 옥단이, 북교
          우연히 만난 지인 소개로 북교동의 80년 된 고택을 보고 한                   동의 남자 옥단이' 라 불러 챙피하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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