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4년 07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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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그리오, 전시장 전경1                                오감도 그리오, 전시장 전경2










            와 맞선다. 1934년 7월 24일자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연작시 <오감도>에     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고흐에 대한 연민을 자화상처럼 옮겨낸 작품들에
            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며 ‘초현실의 초현실’을 논한다. “제1의 아     서도 이 시간과 저 시간을 가로지르는 ‘자의식의 과잉’이 자리한다. 김성룡 작
            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 아해도무섭다고          품은 폭풍 같은 파격 에너지로 종래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일종의 연작시
            그리오. … 중략 13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        (連作詩) 같은 그림들은 전체적으로 긴장·불안·갈등·싸움·공포·죽음·반전 등
            서워하는아해와그러케뿐이모혓소.” 난해시로 일대 물의를 일으킨 오감도는          으로 현실을 해체하는데, 두려움과 절망에 맞선 현실을 ‘부릅뜬 역전(逆轉)’의
            조감도(鳥瞰圖)의 징표를 부정적으로 바꾼 신조어(新造語)를 낳으며, 종래 시      눈으로 표현한다. 석양의 기억들이 피 같은 색으로 물드는가 하면, 키 큰 나
            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파격미’를 보여준다. 총 15편의 연작시(連作詩)들은 제    무의 견고함이 해체된 선으로 해방됨으로써 자아를 느긋하게 풀어주기도 한
            8호에 ‘해부(解剖)’, 제9호에 ‘총구(銃口)’, 제10호에 ‘나비’라는 부제를 제외하  다. 이러한 상징성과 컬러는 고흐와 고갱의 작품에 혜택을 입은 셈이지만, 김
            면, 부제 없이 일련번호로 구분돼 있다. 이는 보는 순간 사람의 감성을 삼켜버     성룡은 천연적인 컬러와 형태의 과격한 강화 속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
            리는 ‘김성룡의 그림들’과 유사하다. 초현실주의를 넘어선 환상적 파격주의를       계를 놓치지 않는다.
            표방한 작품들은 반복, 반전에 의한 부정, 신조어 등을 사용한 ‘시인 이상의 시
            각화’라고 평해야 한다.                                   김성룡은 이렇듯 여러 개의 자아를 그림 안에서 조율하면서 현대인들이 상황
                                                            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갈등을 함축해 그려낸다. 오늘날 다양하고 자극적인 상
            조감도(鳥瞰圖)는 미술용어로 공중에 떠 있는 새가 아래를 내려다 본다는 것       황에 직면하게 된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고, 일그러진 불협화음의 조율을 통
            을 뜻한다. 이상의 ‘오감도(烏瞰圖)’는 ‘조감도’라는 한자의 글자모양을 변형시    해 ‘검열의 자아’를 드러내라는 것이다. 자아의 분열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공
            켜 새로운 단어를 만든 것이다. 까마귀오(烏)와 새조(鳥)는 흡사한 모양을 하     포감 넘치는 현실은 우리 스스로를 지배해 버릴 수 있다. 그러하기에 이상과
            고 있지만, 까마귀는 독특한 분위기를 통해 암울한 현대인들의 삶을 암시적으       김성룡의 작품들은 현실에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해방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로 표현하는 상징체이다. 연작시 오감도에서 시적 화자는 스스로 까마귀를 자       있다.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쳐내어 현실과 비현실을 콜라주하는
            처하며 공중에 붕 떠 있다. 공중에 떠있는 까마귀의 시선과 각도로 인간세계       방식은 순수를 넘어선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킨다.  새로운 영감(靈感)을 발
            를 내려다보는 설정은 ‘화가 김성룡’에게도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난해 시로       생시키는 작품들은 온갖 제약을 파기하고 사회의 명령에서부터 해방된 개인
            지목된 이상의 시는 언어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독자의 상상력만 증폭시       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 아닐까. 문학과 미술에 한정되지 않은 이들의 편집
            킨다. 읽어도 알 수 없는 시, 보아도 알기 어려운 그림, 이러한 설정은 ‘천재들   증적 작품해석은 문학·회화 양면에 걸쳐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하는 천재
            이 생략과 중첩을 통해 감추어 둔 현재적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비현실적 현실’의 풍자화, 금기를 금기하라!
                                                            갤러리끼 대표 이광기는 “이번 전시는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
            김성룡은 연금술사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마술을 부린        로, 관람객들에게 창의적인 영감을 전하고자 한다. 시인 이상과 화가 김성룡
            다. 김성룡의 ‘선(線/先)’은 시대정신이다. 여기서 선은 세상의 모든 것에 맞선,   의 만남은 융합과 창작의 시대를 여는 독특한 사유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
            앞선 시각이다. 작품에는 리듬이 있고 다양한 변주를 머금는 환상적 초현실        다. 새로운 삶의 세계와 인간 가치의 회복을 모색하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이 존재한다. 평론가 이진명은 나무에 걸터앉아 허공을 보는 <랭보>라는 작       구축한 김성룡의 작품은 파주 갤러리끼(28점)와 서촌 이상의집(2점)에서 선
            품에서 “세찬 바람을 맞아서 크게 자라지 않은 나무 … 시인의 환한 이마를 가     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갤러리끼 파주(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로지르는 세찬 바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제주에서 활동해 온 작가의 처       521-2)에서 진행된다. (문의 010-8186-1059, @gallerykki/ 매주 일.월 휴관)
            연함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보듯 ‘시대에 맞서 싸우는 고독한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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