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2025년 4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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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여울, 32x32cm, 2016                          존재의 순환, 40x40cm, 2023










            침) 디지털복원으로부터 시작된 ‘헤리티지’에 대한 관심은 작품의 원형과 동       은 연(蓮), 모란 등 겹꽃을 전면에 배치하면서도 제목은 <흐르는 여울>, <은
            시대적 해석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순환형 작        총 속에서>, <피어나리> 등과 같은 시적 감성으로 해석되면서 ‘시중유화(詩
            업들은 ‘개별적 작품’이 아닌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실험 속에서 전통을     中有畵)·화중유시(畵中有詩)’ 미감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김은희의 꽃그림은
            ‘어렵고 고루한 과거 형식’이 아닌 ‘한국화의 아방가르드’로 인식시킨다. 이른     전통 채색화에서 배재된 여백의 강조 속에서 ‘피고 지고 빛나는’ 시간성이 전
            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그리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작가는 어제를        면에 부각 된다.
            바탕삼아 새로운 내일을 창조하는 작업방식을 택한다. 전통 재료와 방식을 고
            수하면서도 두터운 장지의 공극(孔隙)을 메우기 위해 먹색을 바탕에 까는 것       헤리티지와의 연결, ‘한국화의 아방가르드’
            도 이 때문이다. 수묵을 바탕삼은 채색, 작가가 전통 채색 기법과 영상작업을
            아울러 보여주는 이유는 철저한 밑 작업 위에 올려낸 재료 실험을 ‘동시대 미      작가는 복원적 회화가 아닌 창조적 고고학의 관점에서 ‘지위가 배제된 모두를
            술언어’로 표출하기 위함이다. 분채(粉彩)와 석채(石彩)를 아교로 교착하는 과     향한 예술’을 지향한다. 과거에는 그들만의 문화였던 헤리티지들은 김은희 작
            정, 색의 미세한 중첩을 감성과 연동시키는 과정 등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자      가를 관통해 ‘모두를 위한 동시대 미감’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원광대 한국문
            신의 내면을 찾는 작가의 예술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오방색의 확      화학과 회화문화재보존수복 전공에 진학하면서 ‘회화문화재보존수복 과정’
            산을 좇되, 문화유산의 보존과 탐구를 바탕삼은 ‘창작과 감상’의 관계성을 드      에 깊이 빠져들었다. 충청 지역의 고대문명인 백제문화를 탐구하면서, 1971
            러낸다. ‘우리 색’을 활용한 헤리지티의 순환은 ‘어제와 오늘의 대화’ 속에서 ‘   년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된 무령왕릉(武寧王陵)의 재해석을 통해 이루어 낸
            피고-지고-흐르고-빛나는 생명 탐색’을 보여주는 것이다.                 것이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은 2021년 이후, 작가는 그 누구도 시도하
                                                            지 않았던 왕과 왕비의 두침(頭枕)과 족좌(足座)를 ‘평면 채색화(Flat Colored
            귀한 미감의 발현, 꽃(多彩花)                               Painting)’라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다양한 문양과 장식이 치장된 왕비의 두
                                                            침은 백제 왕비초상과 함께 작가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단초가 되었
            김은희 작품의 초심은 한국 채색화의 주요 제재인 ‘꽃’으로부터 발현된다. 작      다. 전시장에 들어선 일반인들은 설명을 보지 않으면, 김은희의 <두침과 족좌
            가는 학창시절 접한 일본화와 다른 한국적인 에너지를 민화의 조형성(90년        > 그림의 제작 목적을 알지 못한다. 이는 목적을 배제한 ‘헤리티지의 표현’ 안
            대)에서 발견한다. 이른바 오방색에 바탕한 꽃의 모티브들은 재현민화(혹은        에 김은희가 세련된 의도(21세기 조형미)가 담겼기 때문이다. 헤리티지의 복
            전통민화)를 넘어선 ‘창작민화’를 개척하면서 오늘에까지 이어온 제작방식이        원에서 추출한 순수동기의 발현은 ‘유물론적 사고(결과)’로부터 벗어난 ‘여백
            다. 꽃을 향한 작가의 실험은 채색화를 다채화(多彩花)의 관점에서 서술하면       의 가능성 처럼’ 한국화의 새로운 개념성으로까지 확장된다. 헤리티지의 최
            서, 사실적 재현에서 민화 모티브의 평면화로까지 확장된다. 이른바 FLAT 시     고 미감을 ‘확산의 에너지’로 연결한 김은희의 작품들은 한국채색화의 재해
            리즈는 꽃의 대중화를 향한 사회 반영적 해석을 가미한다. 팝아트의 경향성        석과 맞물려 ‘힙트래디션’이라는 동시대 전형성을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아
            이 민화와 연결되듯, 김은희의 한국화 역시 여백을 살린 다양한 꽃의 길상(       로새기는 중이다.
            吉祥)을 내용과 형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이른바 꽃의 허실상생(虛實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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