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전시가이드 2023년 04월 이북
P. 23
강권진 작가가 개발한 열림체_ 열림서예연구원 內애 전시된 여러종류의 특이한 붓들
언제나자신이 다짐한 처음의 약속을 잊지말기를 바라며 쓴 작품
은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지도를 하였으며 그 당시 일본식 발음으로 ( 등을 선보이며 지상파 여러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書道)라는 말을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명에 따라 “서
예”라고 명명하여 부르게 되었고, 한글과 한문 글씨체를 개발하여 사 작가는 정신 수양을 위해 많은 사람이 붓을 들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
용하였으며 일본에 가 있던 우리나라 국보 새한도를 찾아오는 공을 세 다. 하지만 서예가 힘들고 오랜시간 수련을 해야하는 작업이라 젊은 작
우기도 한 분이었다. 그분의 사사를 하고 강권진 작가는 서예가로 왕 가들의 배출이 극소수이며 그나마도 늦게 입문하는 사람들이 중도 포
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기하는 상태로 전통예술이 사라지는 현상이 안타깝다고 한다. 작가와
함께 활동했던 작가들을 보면, 평보 서희환, 학정 이돈흥, 창석 김창동,
그는 1969년 ROTC 7기로 임관하여 육군 대위로 중대장, 육군보병학 매산 김선원, 옥산 김옥진, 옥전 강지주, 운곡 강장원, 석당 우희춘, 서
교 교관을 역임하였으며 전역 후에는 제약회사에 사원으로 입사하여 양화가 이두식 작가 등이 있다.
본부장(이사) 자리까지 오르고, 44세에 퇴직을 하여 35년 동안 인사동
에서 그의 호(號)를 따서 열림필방을 운영해 오며 작가로서도 열심히 작가는 스승인 소전 손재형이 글씨체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며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인사동을 지켜 온 열림필방은 많은 사람에게 6세 때 “왜 책대로 쓰지 않고 마음대로 글씨를 쓰느냐”고 지적하는 말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게 되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한국의 정서 에 손재형 선생은 “어린 네가 어떻게 보고 느꼈느냐며 감탄하면서 이
를 살펴볼 수 있는 부채, 화선지, 신기한 붓 등 꼭 들려보고 싶은 명소가 글씨체는 내가 만든 서체이니 너도 열심히 공부하여 너만의 글씨체를
되기도 하였다. 특히 대기업의 대표 및 여러 나라 국가의 대사 등이 열 개발하여 보거라”라는 말을 기억해 놓고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자
림필방을 찾았고, 6시 내 고향, 나 혼자 산다, 그 외 인사동 홍보 및 휘호 신의 글씨체를 완성하여 특허 받았다. 그 글씨체는 음양체라 하여 우주
2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