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전시가이드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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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초대석
뉴심포니 No.24-연꽃을 든 부처님(염화시중), 2022, Oil on Linen, 100x100cm
그 요소만으로도 세계와 감성을 표현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을 실제로 작품의 양상을 분석해보면, 더 큰 로고스를 찾아가는 행로를
회화에서도 활용하고자 했던 이가 칸딘스키였다. 따져보면, 음악의 직감적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세계관은 멀리 피타고라스까지 소급되는 역사를 지녔다. 놀랍게도 불교의
세계관도 수와 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의 시각적 발현이 ' 파토스(pathos)와 로고스(logos)
만다라(Mandala)'다. 등장하는 부처와 보살의 위치와 수를 헤아려보면, 자연의 현상은 우연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인간은 이 우연들을 관찰하고
그것이 얼마나 수학과 음악적 체계에서 조율된 것인가를 순식간에 측량하여 필연의 논리적 구성으로 해석하는 일을 해왔다. 그것이 문명이고
알아차릴 수 있다. 과학이었다. 그러나 개별적인 삶과 현상들은 여전히 파토스의 미궁 속에
있으며, 아직까지 헤아리지 못한 불협화음은 무수하다.
김순남 작가(이하 작가)는 칸딘스키에서 부처의 세계를 보았고,
동시에 불교에서 칸딘스키와의 친밀성을 찾았다. 그가 ‘뉴 심포니(New 작가는 이 불협화음을 화면 위에 먼저 전개시킨다. 예컨대, 작가는
Symphony)'라 명명한 작품과 시리즈는 그래서 추상과 불교의 세계관이 계획적으로 창작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작업과정 어느
교집합을 이루는 영역에 자리 잡았음을 암시한다. 심포니란 바로크 음악 순간에 일변할 수 있는 예측불가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완성되었을 때는,
이후에 자리를 잡은 악곡형식이기도 하지만, 원래 음악 그리고 예술에서 미리 전개했던 불협화음과 파토스가 작가가 만족할 만큼의 로고스로
핵심적인 위치를 점했던 개념이다. 인간이 미적인 생산과 소비활동을 평정되었을 순간이다. 그러니 작가의 작업은 흐트러지고 불확실한 세계를
영유하기 시작하면서, 심포니는 인간에게 평온과 안정 그리고 질서에 대한 조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겠다. 그러려면, 화면은 일단 ‘
의지와 욕구를 실현하는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바흐(J. S. Bach)의 평균율 원초적인 자연(natura naturans)’이 되어야 한다. 태초의 파토스에 화음을
속에 들어있는 핵심적인 원리도 심포니다. 더하고 혹은 불협화음을 소거해 나가는 작업이 완성까지의 요지다.
작가는 그 심포니를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를 오래 동안 고민했고, 일견 통일된 색조로 보이는 화면은 수많은 색들의 아우성치는 조합이다.
여러 방식과 형식으로 실험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전시들은 그의 실험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화용 나이프로 얹힌 혹은 더해진 색의 덩어리들은
대한 이력서가 될 듯하다. 그 경향을 추적해보면, 오히려 로고스적인 난립의 양상을 띤다. 특히 나이프로 더해진 작은 크기의 색상들은 화면
구성체계에서 파토스로 진화해 나간 인상을 준다. 말 그대로 반대방향으로 위에 섬세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파동은 색뿐만 아니라, 색 덩어리의
발전시켜나간 듯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인상적 차원에서의 판단이고, 질감과 촉감에서도 감지된다. 이 파동을 잠재우고 수많은 색의 점과 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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