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전시가이드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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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 8 61x80cm Acrylic on canvas 2023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 26 60.5x50cm Acrylic on canvas 2023
에게 작업은 그린다기보다는 물감이 궤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우연이 개입 듯 자연의 기운을 대변하는 달과 바람, 그리고 구름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려
된 과정이다. 이러한 우연의 개 입은 필연으로 이어진다. 마치 생명현상이 우 고 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연으로 출발하여 필연으로 전개되는 바와 같다. 작가는 “예술의 길이란 도를 ‘달’ 혹은 ‘달빛’은 다양한 예술 장르의 보편적인 소재이자 모티브로서 지금까
닦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예술은 기나긴 인내와 수행의 결과물인 까닭이다. 지 이를 매개로 하여 수많은 시와 소설, 회화나 조각, 영화, 음악 등이 창작되
제3악장에서 평론가 김성호는 정산 김연식의 이러한 일련의 시도를 ‘무작위 어 왔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달빛은 지상의 우리에게 다양한 미적 정
의 작의(作意)를 실현하는 전환의 미학’으로 읽는다. 한국인의 미의식에 깔린 서와 시상(詩想)을 환기해 준다. 이를테면, 드뷔시의 ‘달빛’에서 주된 흐름은
‘무기교의 기교’와 함께 ‘무작위의 작위’라 는 작가의 의도인 셈이다. 이는 우 달빛의 따뜻함과 밤의 외로움이 서로 대비를 이룬다. 드뷔시가 차용한 폴-마
연적인 것에 자연스레 부수된 필연의 요소가 어느 정도 가미되는 것이며, 양 리 베를렌의 시에서 달빛은 고요함과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의 삼중구조를 이
자 간에는 불교의 연기적(緣起的) 세계관이 맞물려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의 룬다. 어둠이 짙은 산등성이에 올라 바라보는, 커다란 나무 사이에 떠오르는
예술작품은 궁극적으로 생성과 소멸, 색(色)과 공(空)이라는 불이(不異)요, 불 달은 우리에게 온갖 상상력을 자극한다.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장면은 보는
이(不二)로서 하나의 동일한 의미 연결망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연결망은 얽히 이에게 따스함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밝은 것에
고설킨 우리 삶의 행로에 다름 아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소통하며 생태 대한 소망, 밝음의 대상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
적 환경을 이루며 살아간다.
작가 김연식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을 일으키는 여러 장치를 이용하여 바
제4악장 <달과 바람과 그리고 구름>(2023.11.27-12.6)은 조화와 균형의 모 람의 방향과 강도를 조절한다. 화면 위에 바람이 지나간 물감의 흔적이 자연
습을 이루어 낸 것으로 보인다. 정산 김연식의 예술세계란 “자연에서 인간으 스럽게 그려진다. 바람 소리는 대기의 숨소리와 대자연의 울림으로서 그 나
로,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며, 이는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름대로 하나의 교향악을 연출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지에 다양한 생물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색이다. 교향곡에서 제 4악장의 의미란 화려한 피날레 자생하며 자라난다. 자라나는 미물들을 양육케 하는 자연 에너지로써의 바람
를 뜻하기도 하고, 모순과 대립이 해소되고 지양(止揚)되어 하나로 합일되는 은 달과 구름을 움직이는 대자연의 호흡이 된다. 바람의 흐름을 보면, 밀도가
경지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생동감의 절정을 이룬다. 제4악장에서 다루는 소 높은 고기압에서 밀도가 낮은 저기압으로 평형을 이루기 위해 이동한다. 바
재로서의 달과 바람, 그리고 구름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산 김연식 람은 다양한 풍화 작용을 거쳐 지형의 모습에도 여러 변화를 가한다. 고대 그
의 자연은 달과 바람과 구름으로 대변된다. 달은 차고 기우는 것이 정한 이치 리스 신화에서는 방위(方位)에 따른 네 바람이 아네모이(Anemoi)로, 로마 신
이며, 바람의 움직임 또한 정중동이요, 동중정이다. 지표면의 뜨거워진 공기 화에선 벤티(Venti)라 불리는 신으로 의인화되었다. 그리하여 계절에 따른 바
가 상공의 찬 공기 쪽으로 상승하며 생성된 구름은 정지하듯 움직이고 움직 람의 변화를 관측하고 인간사에 관여하였다.
이는가 하며 멈춰 있는 듯이 보인다. 지표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수 정산 김연식의 작품세계에서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다시금 자연으
현상이나 기상현상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구름의 흐름에 의해 발생한다. 이렇 로 회귀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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