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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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컬럼
혼-시간을 담다20, 260X194cm, Acrylic on canvas, 2020
종이가 바람이 되다(Paper·Wind·Wish) 의 착시현상에 의한 ‘평면 오브제’의 접근으로 시작된다. 에어브러쉬를 통한
구겨진 종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종이’ 작업에 몰
서양화가 최 필 규 두하게 된 작가는 민간신앙과의 연상 작용으로 그 의미를 구체화하였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댁 대청마루 위에 걸린 성주대를 본 기억을 떠올린 작가는 종
이를 그린 회화에 성주대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오브제해 작품을 완성해 갔다.
글 : 김재덕(갤러리 아트팜 관장 칼럼니스트)
mM ArtCenter에서 두달여 동안 선보인 그의 작품은 종이로부터 시작된 기
억의 길로 감상자들의 심미감을 자극해 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설치
성줏대는 집안의 안위와 풍요를 기원하던 민속신앙의 풍습으로 주로 작은 소 작품 ‘생명의 나무’가 압도적인 규모로 눈길을 끈다. 볏짚을 밟고 지나 ‘생명
나무의 상순이나 가지를 3척 정도 길이로 잘라내어 중간에 한지를 매달아 사 의 나무’에 도달하게 되는 그 어린시절의 기억은 바로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
용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대나무를 꺾어 만들기도 한다. 성줏대는 가옥을 신축 며 만들어지는 길이다. 12m 길이로 대나무를 이어붙인 작품 군데군데엔 기다
했거나 이사를 하여 성주신이 필요할 때 성주신 봉안의식을 하는 우리 고유의 란 흰 종이가 매달려 바람에 나부낀다. 바닥에 깔린 볏짚으로 시작하여 “탄생
민속 풍습이다. 또 대주(大主, 집주인)의 나이에 따라 성주의 운이 들면 성줏대 과 죽음, 기쁨과 슬픔, 가벼움과 무거움, 음과 양의 상대적 개념은 평행적인 위
를 만들어서 성주를 받는데 대주의 나이는 일곱 수가 드는 해인 27, 37, 47, 57, 치에서 공존한다”는 작가의 사유를 반영한 듯 지상에는 우주를 상징하는 원
67세에 받으며 의식은 그해 시월에 택일(擇日)하여 행한다. 안택을 할 때 성주 이 무수한 종이 위에 자리한다. 나오는 길 우측에는 오지리에서 촬영한 나뭇
가 뜬 경우에도 성주를 받기도 한다. 성줏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집 가지에 붙어있는 창호지 겹겹이 바람에 흔들리는 영상 이미지를 재현해 놓아
주변의 대나무를 꺾어 성줏대를 만든다. 법사나 무녀가 성주가 있는 곳이 어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 정신을 엿볼 수가 있다. 어린 시절 평택 지역의 잦은 물
디인가를 묻고 성줏대가 이끄는 곳으로 나가 성주를 집 안으로 모셔 들인다. 난리를 경험했던 작가는 풍수해 없는 한해를 기원하던 농촌의 향토적·토속적
정서를 작품에 의미화 했다. 생명의 나무는 1층 전시실부터 3층까지 이어지
최필규 작가의 초기작에서 나타나는 종이 작업은 종이의 구겨진 듯한 조형 는 모습을 해 지상과 천상, 생명의 뿌리와 만물의 생장을 상징한다. 특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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