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전시가이드 2025년 02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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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눈 내리는 날이면
글 : 장소영 (수필가)
매서운 칼바람이 덜컹, 휘이잉~, 요란스럽게 바깥 창문을 건드려댄다. 두 그루가 동화책 그림처럼 하이얀 빛을 발했다.
전국이 북극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다. 눈마저 내려 길바닥도, 하늘의 구름도, 구수한 밥 짓는 냄새와 들큰한 시래기 된장국이 끓고 있는 정지를 들여다보
공기도 얼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도 치솟더니 가스 공급 차 면 타닥타닥 붉게 타들어 가는 솔가지가 아궁이 안에서 춤을 췄다. 발목이 팍
질을 핑계로 몇 배 뛰어오른 난방비 때문에 우리네 삶도 빙하기를 맞았다. 마 팍 빠지는 눈 위에 세숫물을 휙 뿌리면 그 자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약
음마저 얼어붙은 채로 추위가 뼛속까지 찌르는 이 혹독한 계절을 냉방, 냉골 속이나 한 듯 동네 아이들이 외가 옆 텃밭으로 모여들었다. 녹아버릴 눈이 아
에서 지내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쉬울세라 바지런히 눈덩이를 굴리고 굴렸고, 누가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드
나 내기했다.
살풍경한 바깥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화
롯불 속 익어가는 군밤을 기다리던 외갓집 방안 풍경이 떠오른다. 외풍으로 시간이 갈수록 부잡해져 뒷산 언덕배기에서 미끄럼타기, 난장판 눈싸움을 하
코끝은 시린데 군불의 열기로 엉덩이는 군밤과 함께 구워지던 겨울이었다. 밤 다 보면 옷은 철벅 철벅 젖어 크고 작은 얼음덩이가 매달렸다. 손발은 푸르딩
새 사그락사그락 눈이 쌓여 아침에 방문을 열면 대청 너머 커다란 은행나무 딩, 얼굴은 검붉게 얼어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내 꼬락서니에 외할아버지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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