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2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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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는  석벽  위에  자연  암석을  기초로  활용해  건축되었다.  하층에  각각

                          길이가 다른  17개의  기둥과  상층에  7개의  기둥으로  7간(間)이며,  8작(八作)
                          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멀리  장엄하게  펼쳐지는  태백산맥과  두타산이  죽서루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포인트였으나 불행하게도 건축 관련 공직자들의 무지로 아파트가 세워져 시
                          야를 방해하고 있는 상태다.

                         누각 밑으로 50굽이나 휘몰아쳐 내려온  오십천(五十川)이 누각 밑  깎아지른

                          절벽에 부딪쳐 동해로 빠진다. 관동팔경이 모두 바다를 끼고 있으나 유일하
                          게 죽서루만이 내륙에 강을 끼고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이렇듯  수려한  절경  때문에  예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이  이곳을  찾아  시와
                          그림을  남겨  놓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를  비롯해  이곡(李穀),
                          안축(安軸),  정추(鄭樞),  김구용(金九容),  김극기(金克己)등과  조선시대에  숙

                          종대왕, 정조대왕 어제시와 하륜(河倫), 이륙(李陸), 심언광(沈彦光), 율곡(栗
                          谷),  양사언(楊士彦),  차운락(車雲輅),  송강(松江),  허목(許穆),  신광수(申光
                          洙)  등  명인  대가의  시문이  200여수  남아있다.  특히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
                          에서  죽서루에  매료되어  크게  찬양했다.  죽서루  광장에‘송강  정철  가사의

                          터’시비를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직접 세워 놓았다.




                     □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8호


                          척주동해비는  삼척시  정라동  육향산(六香山)  산정에  있는  높이  175cm,  넓
                         이 76cm의 큰 비석이다. 이 비석은 조선조 현종(顯宗) 때의 위대한 정치가요,
                         대학자이며, 당시 삼척부사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세운 유명한 비석이다.

                          현종  원년(1660)에  허목이  삼척부사로  부임한  당시,  동해에는  조석간만의

                         차이가 심하여 그 피해가 극심하였다. 조수(潮水)가 삼척 시내까지 올라와 여
                         름철 홍수 때에는 강하구(江河口)가 막히고 오십천이 범람하여 농작물은 유실
                         되고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까이  생각한  부사  허목은  1662
                         년  신비로운  문장으로  비문을  작성하고  웅혼한  필치로  전각(篆刻:箭字로  새

                         김)하여 비석을 세웠다.

                          자연도 이  신비로운 문장의  위력과  덕화(德化)에  감동되었는지  그  후  조수
                         의  피해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수를  물리치는  위력을  가진  신비한
                         비석이라 하여 일명 퇴조비(退潮碑)라 불린다.

                          이  비석은  당초  정라  만리도(萬里島:지금  큰  방파제  끝)에  건립하였는데
                         48년 뒤인 숙종 34년(1708)에 풍랑으로 부러져서 바다 속에 빠졌다. 그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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