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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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경묘(濬慶墓) 강원도기념물 제43호
이 묘는 미로면 활기리에 있으며 조선 태조의 4대조인 목조의 부(父) 양무
의 묘로서 1899년에 영경묘와 같이 묘소를 수축하여 제각, 비각을 건축하고
구거지에 목조대왕 구거지 비각을 건축하였다. 특히 이 일대는 울창한 송림
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여기서만 구경할 수 있는 산자수려한 곳으
로도 유명하다. 전주이씨 실묘로는 남한에서는 최고의 시조 묘로 매년 4월
20일에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지낸다. 1984년 8월에 삼척군에서
영경묘와 함께 제각, 비각, 재실, 홍살문 등을 일제히 보수하였다.
□ 목조구지(穆祖舊址)와 양묘재(兩墓齎)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5대조인 양무(陽茂)와 4대조인 목조(穆祖) 이안사(李
安社)가 살던 옛 터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活耆里)에 있으며, 활기리 노동
(蘆洞)에는 준경묘(濬慶墓)가 있고 동산리(東山里)에는 영경묘(永慶墓)가 있다.
활기동에 있는 목조의 구지(舊址)에는 돌담의 잔적이 남아 있고 또 샘물이
있으니 그것을 택대(宅垈), 택전(宅田), 택정(宅井)이라 하더니 이성계가 등극
(登極)한 뒤부터는 왕대(王垈), 왕전(王田), 왕정(王井)이라 불렀다 한다.
이성계의 4대조인 고조 이안사가 완산(完山, 현 全州)에서 살다가 기녀(妓
女) 때문에 산성별감(山城別監)을 피하여 그를 따르는 170여명과 함께 이 곳
삼척의 산골 활기리까지 이주하여 살다가 1년 뒤에 부친상을 당하여 고려 고
종 13년(1231)에 노동에 장사지내고 또 모친이 사망함에 동산리에 장사지냈
다. 활기리 구지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3Km 지점 노동에는 준경묘(濬慶墓)가
있고 북쪽으로 2.5Km 지점인 동산리에는 영경묘(永慶墓)가 있다. 이안사(李
安社)는 양친을 안장한 뒤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을 남기고 추종자 170
여명과 함께 다시 함길도(咸吉道, 지금의 함경도) 덕원군(德源郡) 용주리(湧珠
里)로 이주하여 여진족(女眞族)의 천호(千戶)벼슬을 하였다는 기록이 용비어
천가(龍飛御天歌) 주석에도 남아 있으며 이 곳 삼척을 피하여 함경도로 옮겨
간데 대하여는 전주에 있던 산성별감이 다시 삼척에 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전설로는 외갓집 백우(白牛)를 잡아 산신제 제물로 쓰고 소를 돌려 줄 길이
없어 도피하였다는 설도 있다.
조선 말엽 고종 을해(1899년)에 활기구지에 양묘재실(兩墓齋室) 및 비각과
목조사적비(穆祖事蹟碑)를 세우고 양묘에 수호군(守護軍)을 상주시켜 묘를 수
호케 하고 청명(淸明)날에 제향(祭享)을 올렸으며 양묘수호절목(節目)은 다음
과 같다.
61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