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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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을 둔 것에 대한 그 시초는 알 수 없으나 후에 분묘가 허물어져 그 일도 폐지
하였으나 그 후에 다시 이런 일을 여전히 하고 있다”라 하였다.
세종 3년(1421) 1월 13일에 공양왕의 왕녀(단양군 우성범의 처)가 임금에
게 상소하여 아버지를 공양왕으로 어머니를 왕비로 추봉하고 공양왕릉을 정
릉(定陵)으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공양왕의 장자 왕석(王奭)은 처음 이름이 서(瑞)이며 정성군(定城君)으로
봉하고 기사년 11월 2일에 세자로 책봉되어 신미년 2월에 이원광의 딸로 비
를 삼았으며 왕이 많은 예물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차자 왕우(王瑀)는
왕석의 이복동생이란 설도 있다.
왕릉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현종 3년(1837) 가을에 삼척부사 이규헌(李
圭憲)이 개축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천추의 한을 품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 대한 전술한 전설들이 전한다.
이 묘소는 1942년 면장 김기덕(金基德)과 이 지방 인사들이 다시 개축하고
1977년 6월 면장 최문갑(崔文甲)이 봉축하였다.
공양왕은 재위 4년에 나이 50세로 생을 마감했다.
□ 대이동굴지대(大耳洞窟地帶) 천연기념물 제178호
신기면 대이리에 있으며, 1966. 6. 15 천연기념물로 1,995,445평을 지정
하였으며 그 지역일대에 산재하여 있는 석회동굴들이다. 신기 기차역에서 내
려 서남방 13Km 지점인데 교통이 불편하여 도보로 산골짜기를 올라가다가
서하리에서 고무릉리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서 다시 산골 물을
따라 올라가면 물레방아가 있고 더 오르면 대기분교가 있다. 마을을 지나 왼
쪽 높은 산이 갈매산인데 그 중턱에 갈매굴이 있고 계속 올라가면 제일 큰
환선굴이 나타난다.
이 지역은 국내 최대의 석회동굴 지대로서 소위 조선계 대석회암동(고생대
캠브로-오도뷔스기에 해당) 하부지층인 풍촌석회암층에 속하는 두꺼운 석회
암층이 광범위하게 발달되어 있다.
환선굴(幻仙窟), 대금굴(大金窟), 관음굴(觀音窟), 제암풍혈(梯岩風穴), 양터
목세굴(從窟), 덕발세굴, 큰재세굴 등이 있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대이리 동굴
이라 한다. 굴속에는 박쥐 등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학회의 관심거리가 되
며 굴 내부의 석순과 종유석은 관광의 가치 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어 한국
동굴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제8편 참고·상식 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