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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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러졌다.  600살도  넘은  신랑이  새장가를  들기  위해  전국에서  신붓감을  찾

                                 았는데  거기에  삼척미인이  선발되었다.  준경묘  앞에서  살고  있는  나이  95
                                 세,  키  32m,  가슴둘레  2.1m의  당당한  신체조건을  갖춘  미인  소나무였다.
                                 이  미인이 충북 보은군  속리산에  사는  정이품 신랑에게 500살  나이 차이를
                                 넘어 시집가게 된 것이다.

                                 당시  신순우  산림청장  주례로  김종철  보은군수가  신랑  혼주가  되고  김일

                                 동 삼척시장이 신부 혼주가 되어 많은 하객들 앞에서 전통 혼례식이 거행되
                                 었다.  청  ‧  홍  촛불을  밝히고  절차에  따라  혼례식은  엄숙히  거행되었으며
                                 이어서 신랑 신부의 합방례(合房禮)가 진행되었다. 신랑 혼주가 주례에게 신
                                 랑의  꽃가루를  전달하고,  주례는  이를  신부의  혼주에게  전달했다.  나무를

                                 잘  타는  상객이  신랑  정이품송의  꽃가루  함을  바지춤에  찔러  넣고  30m가
                                 넘는  미끈한  신부  몸을  더듬어  타고  올라갈  때  쳐다보던  하객들이  침을  삼
                                 킨다. 상객이 암꽃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붓끝으로 꽃가루를 묻히자 하객들
                                 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들의  결혼으로  낳은  자식  소나무는  현재  산림과학원에서  특별  관리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최근 미인송의 아들들이 서울  남산을 비롯해 독립기
                                 념관, 국회의사당 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  신랑  소나무는  2012년  8월  28일  서해를
                                 할퀴고  지나간  태풍  볼라벤에  의해  가지가  부러지는  등  크게  상처를  입고
                                 현재 치료 중에 있다고 한다.





                           □ 공양왕릉(恭讓王陵)  지방문화자료 71호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추천(秋川,  갈내)  고돌재(古突峙)에  있는  고분(古墳)
                               3기. 삼척에서 남으로 약 40리가면 동막리(東幕里)를 지나‘사래재’라는 나
                               지막한 고개를 넘어가면서 바다 쪽을 건너가 보면 큰 소나무가 외로이 서 있
                               고,  그곳에  석축굽을  돌린  큰  무덤과  그  옆에  작은  무덤  2기가  보인다.  이

                               고분들이 고려(高麗)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 3부자의 능이다.

                                공양왕 4년 7월에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고 8월에 전왕을 폐하여 공양군
                               (恭讓君)으로 봉하고 강원도 원주(原州)로 보내어 감시하다가 다시 왕과 장자
                               인  왕석(王奭),  차자인  왕우(王瑀)등  3부자를  간성(杆城)으로  옮겼으나  역시
                               불안하여 다시 이태조(李太祖) 3년(서기 1394) 갑술년  3월  14일에 그 3부자

                               를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귀양지를 옮겼다가 한 달 뒤인  4월 17일에 왕과
                               두 왕자인 3부자를 모두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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