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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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허목선생이 이 소식을 듣고 다시 개서(改書)하고 양본(兩本)중에서 대자
(大字)는 구본(舊本)을 쓰고 소자(小字)는 신본(新本)을 참고하여 비를 다시
새겨서 숙종 36년(1710) 2월에 부사 박내정(朴乃貞)이 죽관도(竹串島:지금의
육향산)에 비각(碑閣)까지 짓고 옮겨 세웠다.
철종 3년(1852), 부사 이계(李계)의 기문에 의하면“허미수(許眉叟)선생이
글을 지어 다시 조수가 치밀어서 또 다시 그대로 비를 세웠더니 과연 조수가
없어졌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이 비석은 당초 정라 만리도에 세웠는
데 48년 뒤인 숙종 34년(1708), 풍랑으로 부러져서 바다 속에 빠진 것을 당
시 부사 홍만기(洪萬紀)가 비문을 사방으로 찾다가 문생(門生) 한숙처(韓熟處)
에게서 원문을 구하여 모사개각(模寫改刻)한 것을 숙종 35년(1709) 2월에 부
사 박내정(朴乃貞)이 죽관도(竹串島)동록에 비각을 짓고 옮겨 세웠다.(진주
지)”라고 한 것으로 보아 비 전면의 대자(大字)는 문생(門生) 한숙처(韓熟處)
에게서 나왔고 비 후면의 소자(小字)는 허미수(許眉叟)선생이 다시 개서(改書)
한 것을 참고하여 비를 만들어 세운 것 같다.
이 비는 그 후 259년간 그 자리에 보존되어 오다가 비각의 위치가 음지
(陰地)라 비가 훼손될까 염려하여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1969년 12월 6일
이 지방 유지들의 힘으로 현재의 위치인 육향산 산정,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이전 준공하였다.
□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贊碑)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8호
삼척시 정상동 육향산(六香山) 산정 육향정 바로 밑에 우전각(禹篆閣)이라
는 비각이 있는데 바로 그 안에 서 있는 전자체(篆字體) 글씨가 새겨 있는
큰 비석이 대한평수토찬비이다.
이 비석 역시 그 위쪽에 서 있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지방문화재 38호)
를 쓰신 유학의 대가인 당시 삼척부사 허목(許穆)께서 이조 현종 원년(1660
년)에 중국에 있다는 형산비(衡山碑)의 대우수전(大禹手篆) 77자 중에서 48자
를 선택하여 목판에 새기어 군청에 보관해 왔었는데 240여년 뒤인 광무 8년
(1904년) 9월에 칙사(勅使) 종2품 강홍대(康洪大)와 당시 삼척군수 정운석(鄭
雲晳) 등이 왕명에 의하여 석각하고 현 위치인 육향산(六香山) 당시 죽관도
(竹串島)에 건립하였다.
비의 높이는 1.45m 폭 72cm 두께 22cm이다.
비문의 원문은 전자체(篆字體)로 다음과 같다.
제8편 참고·상식 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