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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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선산김씨 문중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구암의 유언을 무시
             하고 족보를 발행하려 하자 선산김씨계 4개파에서 2개파는 대동보 발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2개파만 참여한 그들 최초의 대동보(1986) 서문에는 이 문제를 이렇게 적어
             놓고 있다.

                   ‘금번 대동보 편찬에 즈음하여 4개파 자손이 다 함께 참여하기를 바라 백방으
                 로 광고 혹은 수소문하여 종인이 발견 되었으나 선대(先代)가 미상이란 이유로 두
                 개파는 불참하였다.’
               그 외에도 한충이 그들의 시조라는 문헌 기록은 여러 곳에서 찿아볼수 있다. 그들
             이 아버지를 고려장 시켜버린 패륜아처럼 왜 그들의 시조를 바꾸었으며 또 그 일에

             엄청난 자금과 정성을 쏟아 왔을까.
               그들이 한충을 시조로 그냥 두는데 말못할 사정이 있다면 그의 아들로 고려조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이라는 높은 벼슬을 역임하고 일선백(一善伯)에 봉해진 김천(金遷)으
             로 교체하는 것이 순리이며 정당한 일일 것이다. 후손들이 시조의 위상이나 품격을
             높이려는 바램은 어느 씨족이던 다 같은 희구%求)사항이다 . 그러나 선산김씨들 처
             럼 전혀 관계도 없는 사람을 갑자기 시조로 앉혀놓고 억지 품위를 세우려 하다간 집

             안 망신 당하는 꼴을 자초하고 만다.
               각종 문헌이나 고증에 김추는 삼척군(三陸君)으로만 표기되어 있으며 일선군(一善君)
             은 어느 곳에서도 찿아볼수 없다.
               다만 삼척김씨 족보나 삼척김씨에서 분계된 몇 김씨 족보상에 어느때 부터인가 김

            추 삼척군 일운 일선군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라김씨의 장손(長孫)이랄수 있는
              「경주김씨분관록」에 나타나는 모든 김씨 족보에도 김추는 삼척군 문하시중 또는
            문하시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척김씨보학연구회(三뺘金氏譜學硏究會)가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조사한 자료에 김
            추는 삼척군으로만 기록되어 있으나 우리 족보에는 무슨 이유로 일선군이 끼어 들었

            을까에 대한 의문을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우리 선조 한 분이 집안의 가계(家系:청장보)를 발행할 때부터 추 삼척군을 시조
                 1세로 하지 않은 것은 군호(君號)보다 군왕(郡王)의 품계가 더 높기 때문에 위옹
                을 시조로 하면서 추 할아버지의 삼척군 호에다 일선군을 덧 붙여 놓은 것 같

                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일선군이 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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