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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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에 발행된 선산김씨족보(무술보) 서문에 희한한 기록이 나타난다.
               ‘새로 족보를 발행하려니까 옛 기록을 다 잃어버려 시조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서 어느날 꿈에 시조를 일선군 김추로 하라는 계시가 있어 추를 시조로 한다라고 밝
             히고 있다. 시조가 누구인지 꼭 기록을 들여다 봐야 알 정도의 무지한 사람들이라면

             꿈에 정말 엉뚱한 사람을 시조로 세우라고 했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아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삼척김씨보학연구회」는 선산김씨 측이 추 할아버지를 시조로 업고 삼척김씨를

             자기들 선산계에서 분계되었다고 주장하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지난 2000년 당시
             서울중앙종친회 김형진(金ffiW)회장이 서울사무소에 연구회를 설립했던 것이다.(연구회
             는 2004.10. 9 대종회 공식기구로 발족)
               서울중앙종친회는 그때부터 수천만원의 경비를 염출해 가면서 우리 조상의 올바른
             뿌리찿기 연구 활동과 선산김씨 측의 부당한 시조 왜곡에 맞서 왔다.실무 책임을 맡
             았던 김재홍(金幸私:현 대종회 부회장) 총무는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정독도서관, 서

             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고려공신회, 기타 각 대학도서관 등을 생업도
             팽개친체 365일 매일같이 이잡듯 뒤져가며 고증, 문헌자료들을 수집해 왔다. 이들
             을 근거로 각 대학교수 및 신라김씨연합대종원, 각 관 종친회장들과 수 차례 회동하
             면서 결국 선산김씨 측의 시조 주장이 왜곡 조작 되었음을 객관적으로 판단되도록

             하여 선산김씨 측이 그들의 잘못을 스스로 시인하도록 강구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삼척김씨의 시조 정립이 선행되는 상황이어야 설득력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불씨는 계속 남아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실직군왕의 시조 주장에 완강한 일부지역 종인들은 새삼스럽게 종사(宗史)를 시끄
             럽게 하면서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추 할아버지가 관조

             가 되던 실직군왕이 시조가 되던 우리 집안 일로만 끝나는 일이라면 시끄러울 일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교위공 큰집이나 태사공 작은 집이니 하며 우리만의 족보에 매
             달려 있는 동안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우리도 모르게 할아버지 호적에다 세계(世系)가
             엄연히 다른 사람을 장자(長子)라고 조작해 놓고 이제와서 자기들이 장손(長孫) 이라면

             서 재산을 몽땅 상속 받겠다고 나섰으니 시끄러워도 보통 시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
             게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나마 알게 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단 돈 몇만원 내놓기가 거북한 종친일에 서울중앙종친회가 그동안 많은 비용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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