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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획 2020년 9월 9일 수요일 7
1,700년 전 가야의 유리 세공 목걸이 3건 보물 지정 예고
-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서 출토…‘철의 왕국’가야의 유리 공예 기술 새롭게 조명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가야 시대를 대표 는 데 귀중한 고분임. 1991년 사적 제341호 출토 수정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학교박 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매 한 기술과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이 조화를
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 로 지정 물관의 제2차 발굴 조사 중 토광목곽묘(土 우 희소하다. 또한, 가공 기법 또한 오늘날 이룬 조형의식이 돋보여 당시 장신구 문화
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壙木槨墓)에서 발굴되었다. 양동리 고분 270 의 세공기술과 비교해도 될 만큼 완전성이 의 세련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3세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 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 호는 인접한 여러 고분과 겹쳐 있어 대부분 뛰어나 당시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 기 금관가야의 지배층 문화를 대표할 수 있
고하였다. 되었고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 훼손된 상태였으나 고배(高杯, 높다리 그릇) 적(美的) 감각을 보여준다. 이 시기를 대표 는 귀중한 장신구로서 보물로 지정할 역사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를 비롯해 토기류나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 할 수 있는 중요한 공예품으로서 기술 예 예술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목걸이 3건은 ‘철의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으며, 평균 지름이 되어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중요 술 수준이 뛰어나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
왕국’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는 가야가 다 6~7mm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은 것 한 고분으로 꼽힌다. 분하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가야 목걸이 3건은
양한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나 고유한 으로 보아 여기에 깃들인 가야인들의 시간 * 김해 양동리 고분군: 경상남도 김해시 각각 개별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되었고, 금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과 정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주촌면에 있는 철기시대 무덤군. 1984년 국 마지막으로,「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
다. 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 * 마노(瑪瑙): 수정과 같은 석영광물로서, 립문화재연구소가 처음으로 발굴조사를 했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목 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며 형태도 완전하여 역사 학술 예술 가치 원석의 모양이 말의 뇌수(腦髓; 머릿골)를 으며 이후 1990~1996년의 기간 동안 동의대 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 사례이며, 가야인들이 신분 위상과 지배 계
를 지닌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닮았다고 해 ‘마노’라고 부름 학교박물관이 4차에 걸쳐 발굴조사해 557기 물 중 중국 한대(漢代) 청동 세발 솥(靑銅 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내었음을
* 가야인들은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 의 유구에서 5,100여 점의 유물을 출토했고 鼎, 청동정) 등을 통해 3세기 경 축조된 금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양으로 깎거나 유리 곡옥이나 둥근 옥을 만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 특히, 여러 색의 크고 작은 유리구슬들을 다 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 중요하다. 또한, 금 은 제품을 주로 다
들어 목걸이로 착용했다. 구슬의 재질도 금, 색 유리 등 다종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 량 발견했음. 2004년 사적 제454호로 지정 룬 신라,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이나 유리구
은, 유리, 금박 입힌 유리, 수정, 호박, 비취 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유리를 곡옥(曲 *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 무덤 속 관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 슬을 선호한 가야인들의 생활상과 연관이
등으로 다양하며, 형태도 판옥(板屋, 편평하 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을 넣어둔 묘실을 나무로 짜서 만든 무덤 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깊은 작품으로, 화려함을 추구한 당시 사람
게 가공한 옥제품), 곡옥, 대롱옥(대롱처럼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 들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
기다란 형태의 옥제품), 다면옥(多面玉, 여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인 완결성을 갖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목걸이’ 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되었다. 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러 면을 깎은 옥제품) 등 다채로운 것이 특 추고 있어 당시 유리세공 기술이 매우 우수 는 수정제 다면옥(多面玉) 20점과 주판옥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水晶)을 다면체 * 중국의 역사서『삼국지(三國志)』의
징임 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120점, 곡옥(曲玉)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 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曲玉) 형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기록: “(가야인
*구슬제작 방법: 고대 구슬 제작방법은 두 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 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 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 가지 종류가 있음. 하나는 주형(鑄型) 기법 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들의 기술 면모를 보여준다.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
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金官伽倻) 시 으로, 일정한 틀에 재료를 녹여 부어서 만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으며, 은 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以瓔
기 중요한 고분 중 하나인 김해 대성동 76 든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잡아 늘리기 기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 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
호 고분에서 2011년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발 법’으로, 녹인 유리질 속에 막대를 넣고 잡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 金銀繡爲珍 이영주위재보, 혹이철의위식, 혹
굴조사를 하다가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아 늘려 식힌 다음 일정한 크기로 자른 방 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曲玉) 이현경수이, 부이김은수위진)”
* 금관가야: 6가야(六加耶)의 하나로, 서기 식. 가야 시대 유리구슬은 이 두 가지 방법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 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김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을 모두 사용해 만들었음 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 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이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김해
낙동강 하류 지역에 존속했음. 금관가야라는 끈하게 다듬었고,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 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양동리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3건에 대
이름은『삼국유사(三國遺事)』오가야조(五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 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 있으며,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伽耶條)에 인용된 ‘본조사략(本朝史略)’ 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 발굴조 다.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水晶)은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에서 유래되었으며, 가락국(伽落國; 駕洛國) 사를 통해 나온 터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학 더하여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며,
이라고도 했으며, 초기에는 여러 가야 중 맹 이 분명하고, ▲여러 재료를 정교하게 가공 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梁山) 등 징이다. 앞으로 정부혁신의 하나로 가야를 포함한
주국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대가야(大加 해 색상과 질감을 조화롭게 배치한 가야인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되고 삼국시대 고고유물의 가치를 밝히는데 적극
耶) 또는 본가야(本加耶)라고도 불렸음 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 있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도 노력할 계획이다.
*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김해시 대성동 금관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예품으 발굴해서 얻은 유물이라 출토지와 유물의
에 있는 3~5세기 무렵 금관가야 시대 수장 로 역사 예술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내역이 분명하고, 수정제 곡옥이나 대형 유 김해일보
층(首長層)의 공동묘지. 한국고대사에서 공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 리제 곡옥이 한꺼번에 발견된 희귀한 사례
백으로 남은 4세기 전후의 역사를 재구성하 또 다른 목걸이인「김해 양동리 270호분 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 목걸이처럼 100 로서 중요하다. 또한, 수정을 정교하게 가공
김해 대성동 76호분 목걸이 발굴 장면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곡옥 세부)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수정 세부)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곡옥 세부)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전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