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2023서울고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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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마저 완전 당나라(?) 군대로 남들 *뺑이칠 때 근처 비디오가게의 비디오
                   를 다 섭렵하고도 모자라서 낮잠을 하도 자서 밤에 불면증이 생길 정도였다. 어
                   떻게 하여 이런 무절제한 생활을 끝내고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석사과정도

                   처음에 영어가 안 되어서 조금 고생을 했지 수업내용도 따라 갈만하고 원래 잘
                   모르면 뛰어난 암기력으로 외우는 재주가 있어서 무난하게 마칠 수가 있었다. 박
                   사과정을 진학을 하니 사정은 완전 달랐다.


                     석사 때와는 수업내용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2년 동안 엄청 헤맨 뒤 아버지

                   가 결혼을 늦게 하셨고(아버지는 1928년생, 내가 장남)나도 30살이라 정확하게
                   1993년 5월 23일 날 처음 본 여자에게 5월 25일에 청혼을 하였고, 다음날 장모
                   님께 승낙을 받고, 그 다음날 부모님께 인사를 시킨 뒤 6월1일 날 혼인신고를 하

                   고(당시 유학생이 여름방학동안 결혼을 하여 바로 데려 가려면 혼인신고부터 하
                   고 나중에 결혼식을 하는 게 첩경이었다) 7월 9일에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하
                   고 조금 지나 출국하였다.(방학동안 자격시험이 있어 서둘러 출국하였다)


                     자격시험은 당연히 떨어졌고 그 이후로 난 시험만 봤다하면 떨어지면서 고난

                   의 유학생활을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지냈다. 엄청 천사표 지도교수님을 메사츄
                   세츠 주립대학에서 만나 간신히 박사학위를 딴 나는 기쁜 나머지 졸업식도 참석
                   안하고 서둘러 귀국하니 4년 내내 나에게 뒤져 2등을 했던 윤성이 교수가 떡하
                   니 조교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얼마나 아무 생각 없었던지 유학기간 내내 교수님께 연말에 카드 보낸 거
                   외에는 아무 연락을 안했고 윤 교수는 나보다 훨씬 먼저 좋은 학교(동경대학)에
                   서 학위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교수님과 연구 프로젝트도 같이하며 친밀한 관계

                   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윤 교수가 교수가 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난 교수직에 미련이 남아 여러 학교에 시간강사로 출강을 하면서 2년
                   동안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나의 무능력과 학벌로 인하여 교수가 되는 건 불가
                   능이란 생각이 들 때, 마침 수년전 목장우유회사를 설립하신 아버지께서 내게 집


                                                                   51 _ 4060 우리들의 3色5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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