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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183
168 소록도중앙교회
고흥군 도양읍 양지회관길 8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5월 17일에 일본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성도
총독부에 의해서 전남 도립 자혜의원으로 개 들은 그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눈물
원하였고, 일본인 아리가와 씨가 제 1대 병원 로 기도하며 부르짖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장으로 부임하였다. 제 2대 병원장인 하나이 1945년 8월 22일 해방과 함께 맞이한 것이
젠기스 (花井善吉, 1921. 6. 23 - 1929. 10. 16) 때에 8. 22 참사사건이다. 자치권을 요구하다 많
1922년 10월 8일 일본 성결교단 전도목사인 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그 중에 중앙교회 이
다나까 신 사부로 (田中道三郞) 가 총독부의 허가 경도, 정환수, 김원식, 이차하 집사 등이 희생
를 받아 소록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소 되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이 교회를 끝까지
록도중앙교회는 소록도에서 가장 중심지역 신앙으로 지켰다. 1946년 6월 10일에 김차
인 중앙마을 오락실에서 1938년 1월 1일 이 동을 첫 번째 장로로 세워 교회는 점차 안정
채권 (李彩權) 전도인을 중심으로 창립예배를 되어 갔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김정복 목
드렸고, 지방순회 목사인 오석주 목사가 주 사가 50년 9월 30일에 공산당에 의해 순교
기적으로 예배를 인도하였다. 이 때 교회는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늘나라에 소
일본인 병원 직원들의 신사참배강요, 일본 망을 두고 살아 가는 이들의 모습은 순례자
인 원장 동상 숭배 강요 등으로 갖은 핍박과 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소록도는 일제가 한센병을 천형의 질병으로 생각하고 한센인에게 인권유린하고 강제노역을
시키고 모진 고문을 했던 곳”이라며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찌라도’ 신앙으로 견디었다고
한다. 그럴찌라도 모든 생활에 감사하고, 그럴찌라도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우학리교회
소록도중앙교회